brunch

살아남아줘서 고마워

지옥 같던 학창 시절, 불안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의 회고록

by 정수

내 삶은 단 한 번도 순탄했던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학교 폭력, 불안한 인간관계가 끝없이 나를 짓눌렀다.


우울과 불안은 단 한 번도 내 삶을 자유롭게 내버려 둔 적이 없었다.

밀려오는 자기혐오 속에서 잠들기 전이면 내일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자고 일어나면 이 모든 일들이 어느 영화에서처럼 다 거짓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쉽게 잠에 든 적도 없었다.


그렇게 내일을 두려워하며 그저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만이 내 삶의 전부였다.

늘 도망치고 싶었다.

어쩌면 난 지금까지도 많은 순간들 속에서 도망쳐 왔을지도 모른다.


나는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글자도 써 내려갈 수 없었다.

상처를 다시 마주하려 용기를 낸 순간에 기다렸다는 듯이 어제처럼 생생히 떠오르는 그때 그 기억들이 두렵고 무서워져 외면해 버렸다.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괜찮아지겠지 스스로를 달래며 애써 모른 척했지만, 그 시간들은 결코 나를 자유롭게 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서른넷이 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에서야 나의 아픈 상처를 외면하기만 한다면 소중한 나의 딸에게도 사랑 대신 나의 결핍만을 주게 될까 봐 덜컥 겁이 났다.

비로소 나는 더 이상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나의 아픈 과거를 가족에게 되물려주고 싶지 않았기에 펜을 들었다.

오랫동안 묻어 두었던 상처를 글로 천천히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학교 폭력과 괴로웠던 인간관계들 사이에서 중학교 시절, 나를 가장 괴롭혔던 순간들이 깊게 박혀 그 일들을 생생하게 글로 옮겼다.

처음에는 손이 떨리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글을 쓰는 순간순간 다시 의심이 들고 나아지지 않을 것만 같았고 불안함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런데 놀랍게도 글을 마칠 때쯤엔 내 마음이 크게 동요된 적 조차 없었던 것처럼 편안하고 잔잔해졌다.

오히려 오랜만에 평온한 마음으로 깊게 잠들 수 있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왜 그렇게 괴로웠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는데 나는 늘 가해자들보단 더 나은 사람,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 당당하게 그들 앞에 서고 싶었다.

늘 상상해 왔고 그 유일한 원동력으로 삶을 견뎌냈지만 결국 끝내 더 나은 사람이 되지도 더 대단한 사람이 되지도 못했다는 실망감과 자책들로 괴로웠다.


SNS에서 우연히 보게 된 그들의 근황을 마주하게 될 때면 내 몸은 모든 힘이 다 빠져나갔다.


나는 아직도 거기 그 교실, 아무도 오지 않는 화장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그들은 왜 그렇게 평안할까.

아무것도 더 나아진 게 없는 것 같은 나 자신이 늘 증오스러웠고 그 마음들이 나를 미치도록 외롭고 괴롭게 만들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 모든 실패와 상처와 굴욕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루하루 버텨냈다.

그 지옥 같았던 순간들에서 도망치었을지언정 나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충분히 해내고 있었는데 나조차도 나를 단 한 톨만큼도 사랑하지 않았다.


하루를 버티고 내일이 두려워도 버텨냈던 내가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나는 이제야 나를 조금은 따스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글쓰기는 그렇게 나를 치유했다. 동시에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다.

나와 같은 지옥 속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도 내 글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


나는 화려한 문장이나 뛰어난 어휘보다 진실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고 잠시라도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작가로서의 꿈을 이룬 셈일 것이다.


나는 브런치에서 숨기고 싶었던 치부, 나의 괴로운 기억들을 보다 솔직하게 기록하고 싶다.


내 안의 상처와 불안을 넘어서서, 나와 같은 시련을 가졌음에도 그저 오늘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우리 끝끝내 살아남아 각각 다른 사계절의 향기와 우연하게 찾아오는 작은 행복을 놓치지 말자고, 무엇보다 지금까지도 살아가고,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우리 자신에게 '살아줘서 고맙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의 글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작은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여는 길이 되기를 바란다.


나처럼 아픔을 제대로 마주하기 어려워했던 사람들이 브런치를 통해 용기를 얻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감추지 않고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다면, 그리고 또 위로와 위안을 건넬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끝끝내 반드시 이루어내고 싶은 진짜 작가의 꿈이다.


도망치기만 했던 나를 멈추게 한 것처럼.


이제는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내일을 살아나갈 작은 희망의 한 걸음이 되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삶에서 잠시 도망쳐서 아주 먼 길을 되돌아왔다고 하더라도 괜찮다. 정말 괜찮다.


나는, 우리는 이미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값진 인생을 살고 있다.


그거면 됐다. 그거면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살아남은 나와 우리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내 글이 또 다른 누군가의 내일을 버티게 하는 작은 원동력이 될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