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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지 않는 교실의 그림자

처음으로 빛을 잃던 순간

by 정수

"너는 눈이 싸가지가 없어."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쳐다보면 가만 안 둬."


초등학교 4학년 선배들에 의해 학교 폭력이 처음 시작됐던 날에 내가 들었던 말이었다.


괴롭힌 당했던 모든 날이 기억나진 않지만 그날만큼은 내가 입었던 옷, 머리 모양 전부 잊히지 않는다.

그날은 점심시간이었다. 으레 그렇듯 사물함에 기대어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마주친 적도 몇 번 없던 선배들이 나와 친구들을 불렀다.


처음 본 선배들은 우리에게 한 명씩 "너는 이래서 싫고 너는 이래서 재수 없어. 눈에 띄지 마라 가만 안 둬"

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날 이후부터 사물함은 근처에 가기도 싫었다.


그리고 나는 점심시간, 쉬는 시간이 싫어졌다.

새로 지어 아무도 찾지 않은 강당 화장실도 세상에서 제일 끔찍하게 싫었다.


나는 쌍꺼풀진 눈매에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부모님은 항상 내 눈을 예쁘다고 해주셨고, 나도 내 눈이 맘에 들었다.


그런데 선배들의 이유 없는 분노에 처음으로 내 눈이 못나 보였고, 그다음엔 내 얼굴이 미워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내 모든 게 싫어졌다. 내 존재 자체도 쓸모없다고 느껴졌다. 그 어린 나이에 말이다.


나는 어릴 때 늘 천방지축처럼 해맑고 활발했다.

부모님이 "너는 천생 여수야 여수~"라고 하면서 충청도 사투리로 매일 내게 놀리듯 말하셨을 정도로

나는 타고나기를 해맑고 활발했던 아이였다.


늘 해맑고 활달했던 내가 점점 그늘지고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던 건 그때부터였다.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부모님께 늘 재잘거리다가 밤늦게 내 방에 돌아왔던 나였는데

점점 내 방에만 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점점 비밀이 많아졌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혼자 우는 날이 많아졌다.

가난한 우리 집, 맞벌이에 항상 내게만 시간을 쏟을 수 없던 부모님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선배들은 주로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새 강당 화장실로 우리를 불러냈다.

머리 아픈 시멘트 냄새만 가득했고 바닥은 청소도 완료되지 않아 흰 가루들이 잔뜩 흐트러져 있어 교실로 돌아가면 나무 바닥에 잔뜩 묻어날 정도였다.


그날은 달랐다. 주로 경고를 주거나 때리는 시늉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직접적인 폭력은 없었는데 그날은 우리 셋을 나란히 차례대로 서라고 했다.

그러더니 "우리는 너네가 맘에 안 들어도 착해서 차마 폭력은 못 쓰니까 너네끼리 서로 때려"

하며 서로의 뺨을 때리라고 했다.


나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고 친구 두 명은 강압에 못 이겨서 서로의 뺨을 때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고 친구들을 구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죽을 것처럼 괴로웠다.

이게 꿈이면 좋을 텐데, 아무리 울고 또 울어도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다시 한번 우리가 너네를 부르게 되면 그때는 이렇게 넘어가지 않을 거야. 우리가 직접 때리게 되겠지?"

그 말을 끝으로 선배들은 사라졌고 우리 셋은 눈물만 흘렸다.


화장실 가득한 매캐한 시멘트, 쇠 냄새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슬픔만이 가득했다.


결국 나는 부모님께 그동안 겪었던 사실을 털어놨고 학교에 엄마가 온 이후에 몇 개월은 잠잠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 괴롭힘이 다시 시작됐지만 이전처럼 우리를 따로 화장실로 불러내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폭력이 내 인생에서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중학교 한창 민감할 그 시기에 나는 학교에서 가장 키가 크고 덩치가 컸던 남자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2년 동안 당한 학교 폭력은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때 그 학교폭력은 지금도 내 온몸과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나는 거듭되는 학교폭력으로 함부로 해도 되는 아이, 마음대로 괴롭혀도 되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자신의 진로와 꿈을 생각할 때 나는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

세상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나를 애초에 꿈조차 꾸면 안 되는 존재 자체가 잘못된 사람,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수도 없이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끝내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건 죽는다는 생각만 해도 마음 깊숙이 억울함이 올라와서였다.

학교폭력은 나조차도 나를 증오하고 혐오스럽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너무 억울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대체 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나를 이렇게 괴롭힐까.

그냥 이유 없이 싫다고 하는 그 말들이 정말 당연한 걸까.


그리고 결론이 나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아무리 조용히 숨 죽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날 괴롭혔을 거라는 결론.

나는 어쩌면 처음부터 괴롭히기 쉬운 존재였던 게 아닐까.


지옥 같은 교실 속에서 늘 외롭고 지쳤지만 그럼에도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괴롭힘 당하는 건 내 잘못이 아니니까. 괴롭히는 사람이 잘못이니까.


그래서 이 악물고 버텼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서른네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학교폭력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몸이 지쳐 잠자리에 드는 날이면 그때 그 지옥 같은 교실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여전히 꿈에서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친구들, 등 뒤로 화살처럼 쏟아지는 폭언들,

그걸 듣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나의 모습이 반복된다.


“제발 그만해 줘"

라는 나의 애원에도 돌아오는 건 의자를 발로 차는 소리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욕설뿐이다.


꿈에서 깨어나도 꿈의 잔상은 한동안 나를 괴롭히고 더 크게 울다 지쳐 다시 잠들 때도 많았다.

나는 이제 버티는 것만이 아니라 벗어나고 싶다.


글을 통해서 그 시절의 나를 직접 마주하고 더 이상 도망치지 않으려고 한다.

나를 온전히 위로하고 보듬어 주면서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진 누군가에게 위로와 위안을 전하고 싶다.


나처럼 힘들었던 학창 시절로 괴로운 사람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우리 같이 버텼고, 살아냈으니 이미 충분히 우리는 존재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나는 아픈 과거를 회고하여 글로써 스스로 치유하는 것과 동시에 나와 비슷한 이유로 마음을 다친 이들에게도

작은 위안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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