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우리에게 늘 시간을 준다.
넌 내게 20분을 줬어 ⓒ그림 문선종
야근으로 지친 어깨를 이끌고 버스를 기다린다. 기다리던 버스가 먼발치에서 당당히 달려오고, 나를 향해 돌진한다. 그런데 속도를 줄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핸드폰에 불을 붙여 휘저어보고, 불길한 예감에 몸을 내밀어 내가 있음을 고백했건만 매정한 버스는 내 이마가 훤해지도록 매몰차게 지나갔다. 그리고 배신감에 “저게 미쳤나?”라는 욕이 입 밖으로 나왔다.
내가 이름을 지어준 미친 버스는 꽁무니에 불을 번쩍이며 갑작스럽게 멈췄다. 그리고 사람 한 명을 툭하고 내뱉고는 정말 잠시 동안 서있다 제 갈 길을 갔다. 버스기사는 내려야 할 사람은 내려주지 않고, 탈 사람을 태워주지 않은 채 바쁘게 간 것이다. 버스기사는 딴생각을 했나 보다. 어떤 이야기였을까? 얼른 집에 가서 세끼들을 부릴 마음에 급한 것이었을까?
나는 잠시나마 후회를 해본다. 욕을 하며 뒤 따라 갈걸. 저 버스를 잡았다면 아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데 간절함이 없었나? 나는 20분이 넘는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모기들이 달라붙어 포식을 했는지 가려움이 밀려온다.
작은 노트를 꺼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버스가 빼앗아간 시간이 아니라 버스가 나에게 20분간의 시간을 준 것이라 여기며 노여움보다는 감사함을 느껴본다. 자연스러운 감정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기에 억지로 라도 그렇게 생각을 고쳐본다. 버스도 다시 오지 않지만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도 다시 오지 않는다. 소중하지 않은 시간은 없다. 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무엇이 됬든 간에.
ⓒ 문선종 작가
당당히 자가용을 아내에게 주고, 뚜벅이를 선언한 한 집안의 가장. 출퇴근길 버스에 몸을 실었다. 출퇴근으로 버스에 의지하는 90분의 시간. 책을 읽고 잠도 자 봤지만 가장 즐거운 것은 버스 안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 그래서 관찰을 그 무언가를 관통하고자 한다. 버스 인문학, 당신도 언젠가 버스에 몸을 싣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