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하얀 거짓말

by 정온

국민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책가방을 휙 집어던지고,

곧바로 흑염소를 몰고

풀을 먹이러 나가는 게 나의 하루 일과였다.


보통 애들은 소를 몰고 풀 먹이러 나오지만

우리 집은 뱃일을 하기 때문에 소는 없었고

대신 염소가 있었다.


남자들은 소를 몰고 왔고,

여자아이들은 염소를 간혹 몰고 나왔다.


자연이 놀이터인 시골은

풀 먹이는 목동 일도,

놀이요, 재미요, 하루하루 일상이다.


그 재미에 이끌려

나도 동네 오빠, 언니들을 따라다녔다.


풀을 먹이러 가는 곳은 산 고개 너머 뒷산.

공동묘지 아래 작은 저수지도 있었고,

넓은 잔디밭이 있었다.


주변은 온통 산이라

이것저것 요깃거리도 많았다.


뽈똥나무 열매 후루룩

한 주먹 긁어모아 입안에 넣고 오물오물.

그 달콤한 맛, 잊을 수 없다.


소나 염소를 몰고 가서는

소는 산에 자유롭게 풀어놓기도 했고,

염소는 소나무에 줄을 묶어 두었다.


아이들은 묘지 동산에서

천국인 듯 뛰어놀았다.


간혹 염소가 묶인 나무를

빙빙 돌다 줄이 꼬여 목이 졸려서는

"아이고 나 죽네~"소리치며

음매~~~~~~~~~~~ 하고 울기도 했다.


그럼 우리는 놀다가도

재빨리 달려가 엉킨 목줄을 풀어줬다.


염소한테 큰일이 생기면

진짜 집에서 쫓겨날 판이기 때문에. ㅎㅎㅎ


그곳에서는

자치기나 비석치기,

진똘이 놀이를 주로 했다.


나는 자치기에 재주가 있어서

한 번 치고 공중에 떠오르면

휙ㅡ 한 번 더 쳐서 날려 보내는 맛에

푹 빠지곤 했다.


간혹 자치기에

영 똥손인 친구들도 있었다.

바닥에서 한 번 치고

공중에 떴을 때 다시 쳐야 하는데도

막대를 들고 허공만 휘적휘적.


그런 애들 모습에

서로 배꼽을 잡고 킥킥대며 웃다가

뒹굴뒹굴하기까지 했다.


그 장면들,

이제는 아스라이 웃음꽃처럼 스친다.


엄마는 새끼를 낳아 팔면

용돈을 주겠다고 했다.


마침 우리 집 귀여운 흑염소 '음매'는

새끼를 가진 상태였다.


얼마나 맛있게 풀을 뜯어 먹는지,

항상 피부 결이 반지르르 윤기가 흘렀다.


다른 집 염소들은 성질도 있고

뒷발질도 하고,

어디 하나 못된 구석이 있었지만

우리 '음매'는 말도 잘 듣고

사람도 알아보며 참 착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음매'가 새끼를 세 마리나 낳았다.


나는 고양이 집사이기도 하지만

그때 처음으로 염소 아기들의 귀여움에

홀딱 빠졌다.


엄마 염소를 졸졸졸 따라다니고,

총총 네 발로 땅을 내딛는 모습은

세상에 저렇게 귀여운 동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저 용돈을 받을 생각으로 더 열심히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풀을 먹였다.


아기 염소들도

쪼르르 엄마를 따라다니며

풀을 먹었고 그렇게 무럭무럭 잘 자랐다.


학교에서 돌아온 어느 날,

아기 염소들이 자취를 감췄다.

엄마가 새끼 염소들을 염소 장사꾼에게

팔았다고 했다.

아— 눈물이 주르륵 앞을 가렸고,

꺼이꺼이 목 놓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며칠이고 소리 없는 눈물이 흐르고 또 흘렀다.


그 슬픔이 조금씩 가라앉을 무렵,

엄마는 나에게 용돈도 주지 않고

입을 쓱ㅡ 닦았다.


세상에,

어린 내 마음에

엄마가 얼마나 밉던지.


“앞으로 염소 풀 안 먹일 거야!”

고집도 부려 봤지만

어느새 용돈은 잊어버리고,

다시 내가 좋아하는 염소를 몰고

뒷산으로 향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염소에게 풀을 먹이던

그때의 초록빛 들판이


살아오며

마음속 깊이 간직한

가장 행복했던 추억이 아니었나 싶다.


내 머릿속 기억 창고는

오늘도

추억 여행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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