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 시골 마을에도 드디어 수도가 들어왔다.
그전까지는 마을 곳곳의 우물물을 길러 사용했고, 동네 빨래터에서는 아낙네들이
빨래 방망이를 두들기며 옷을 빨았다.
우리 집 옆에는 조그만 냇물이 흐르고, 뒤편에는 세 집이 함께 사용하는 우물이 있었다.
그 우물은 식수로 사용했지만, 여름이면 시원하게 수박을 넣어 놓기도 했다.
시골 우물물의 맛은 먹어본 사람만 아는 맛이다.
마셔봐야 아는 맛!
입안 가득 퍼지는 시원함과 청량함에 "캬― 시원하다! 맛있다! 달다!"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집집마다 수도가 들어오면서 마당 장독대 옆에 새로 시멘트로 만든 수돗가가 생겼고,
흙 마당도 하나둘 반지르르 시멘트로 바뀌었다.
소나기가 내려도 예전처럼 흙 마당 위에 왕관 모양의 물방울이 피어나는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마당 위에 왕방울처럼 동그랗고 투명한 물방울이 둥둥 솟아오르면,
엄마는 "비가 예사로 오는 게 아니겠다" 하며 비설거지를 단단히 하셨다.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는 둥근 물방울은 있었지만, 동생과 함께 신발 뒷굽으로 구멍을 내고
구슬치기를 하던 그 재미는 사라졌다.
아직도 마당에 엎드려 구슬을 튕기던 두 꼬마의 모습이 선명하다.
수도가 있어도 마을 공동 우물이나 집 뒤 우물이 바짝 말라버리면 엄마들은 마을 어귀 샘터로
식수를 길러 다녔다.
엄마는 집 뒤 고모(아버지 쪽 먼 친척이지만 동갑내기 친구)와 늘상 짝꿍이었다.
낮에는 서로 물을 떠러 오기 때문에 줄이 길었고, 집안일이 바쁜 엄마들은 저녁을 먹은 뒤
양철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후라시를 들고 논두렁을 따라 달빛에 샘물을 길러 다녔다.
뱀처럼 돌돌 수건으로 말아 양동이 밑에 깔고 물동이를 머리에 올리면, 간혹 그 때바리가 바닥에
툭 떨어지곤 한다.
그때 같이 간 사람이 있으면 몰라도, 혼자서는 다시 물동이를 내려야 하고 많이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꼬맹이들이 따라가면, 앉아서 물동이를 머리에 올리고, "때바리 엄마 머리에 올려줘" 하면
잽싸게 자리를 찾아 올려놓는다.
얼마나 요긴할까!
그래서 간혹 꼬맹이들이 따라나서면, 엄마들도 손을 꼭 잡았다.
그 고요하고 외로운 밤길을 함께 견디지 않았나 생각한다.
논둑 아래 흐르는 작은 샘터에서 조그만 바가지로 살포시 물을 퍼 담는다.
꼬맹이도 쪼그리고 앉아 풀잎을 접어 물을 퍼 담는 흉내를 낸다.
흙탕물이 섞이지 않도록 조심조심 담고는, 목마른 꼬맹이에게 물 한 모금 떠서 옆에 풀잎 하나 띄어
내민다.
그렇게 양철 양동이 하나 가득 물을 채우고 집으로 돌아간다.
양동이 물이 걷는 걸음에 흔들거리면 출렁출렁 물이 넘치기도 하는데
우리 엄마는 얼마나 야무진지 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집까지 온다.
물 양동이에 작은 바가지 그대로 하나 띄워 놓으면 출렁이는 물결을 잡아 준다고 했다.
옆에 선 꼬맹이가 후라시를 들고 밤길을 비춰준다.
사실 엄마의 밤길을 비춰준다기보다는,
꼬맹이의 어두운 밤이 무서워 자기 발 앞을 비추고 있었다.
엄마는 "아이고, 앞을 비춰줘야지"
하고 간혹 타박도 한다.
그때 달 하나 없는 어두운 밤은 꼬맹이에게 참 무서웠다.
별이 총총한 날에는 엄마 따라 손을 잡고 하늘의 별을 보며 반달 노래를 불렀다.
엄마와 같이 부르던 동요
반달 (작사.작곡: 윤극영)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ㅡㅡㅡ
엄마는 별 총총 밤하늘을 가리키며
"저건 북극성, 그 아래는 북두칠성, W 모양은 카시오페이아야…"
이렇게 별자리를 알려주었다.
그 시간이 어린 나에겐 신비롭고 설레는 별 공부 시간이었고,
동생과 언니랑 밤에 놀 수 있는 놀이터 겸 장난감이었다.
간혹 달조차 뜨지 않은 캄캄한 밤이 오면
너무 겁이 나서 엄마 허리춤을 꽉 붙잡고 졸졸 따라갔다.
"어디까지 왔어?"
"삼촌 논 옆이야."
"어디까지 왔어?"
"누구 할매 밭 옆이야."
그렇게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엄마 엉덩이 옷깃을 붙잡고,
쫄래쫄래 집으로 돌아오던 그 시간.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나의 인생기는 한편의 동화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세월이 많이 지났다.
지금 세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옛 시절, 나는 그 시간을 그리워한다.
부모님은 하늘로 가셨고, 그리고 그리운 계절이 다시 찾아왔다.
오월, 그때의 젊은 엄마, 아부지가 그립다.
무거운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묵묵히 걸었던 엄마의 발걸음.
새벽 4시, 졸리는 눈으로 일어나 새벽밥을 드시고 배 타고 통발 나가셨다.
자식들을 위해 아낌없이 땀 흘리셨던 아부지,
그 험난한 파도를 견디며 고생하신 엄마.
그때는 그런 삶이 사는 것이다. 누구도 그것이 고됨이라 말하지 못했다.
짊어진 어깨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까.
그 시절엔 미처 알지 못했던 부모님의 고단함을,
이제는 그 시절의 엄마보다 나이가 더 든 내가 그리움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