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친구들 단톡방에 부고 소식이 올라왔다.
저번 동창 모임에서도 아무 기색 없던 터라 마음이 더 덜컥 내려앉았다.
갑작스레 세상과 작별한 친구의 아내.
무슨 말로 위로를 건넬 수 있을까 막막했다.
조문이란 자리는 여러 번 다녀봐도
늘 마음 깊은 곳을 누르는 무게가 있다.
왕십리 사는 친구와 청량리역에서 만나 서둘러 인천으로 향했다.
친구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 한쪽이 무너져 내렸다.
갑자기 떠난 사람이 남기고 간 빈자리,
두 아들이 버텨내야 하는 혼란스러운 시간들.
놀란 듯 힘없이 축 늘어진 가족들의 어깨는
그 슬픔을 말없이 전해주고 있었다.
조문을 마치고 나오는데,
수십 년 만에 보는 동창이 우리 이름을 불렀다.
반가움보다 먼저 스친 건
“오늘이 아니었다면 다시 볼 기회가 있었을까” 하는 묘한 마음이었다.
삶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오래된 인연을 불러낸다.
참 희한한 일이다.
시골은 어찌어찌 친척들로 이어져 살아간다.
이웃이 친척이고, 친척이 이웃인 동네.
친구의 외갓집은 우리와 육촌 관계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다른 학교로 진학한 뒤로
마주칠 일이 없었던 것 같은데,
여전히 서로 얼굴을 알아본다는 건
세월이 흘러도 남아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겠지.
그 친구는 교회를 오래 다녔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 앞 광장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참 예쁘게 꾸며져 있다며
잠시 구경하고 가자고 말했다.
오랜만에 마주한 친구의 마음을 거절할 수 없어
구로의 한 교회로 향했다.
교회 앞 광장에는 거대한 트리가 서 있었고,
그 아름다움에 발걸음이 잠시 멈췄다.
광장 한편에는 작은 먹거리 코너도 마련되어 있어
사람들은 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고,
간단한 음식을 나누며 살아 있다는 온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우리도 중학생 시절로 돌아간 듯
함께 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네온이 반짝이는 풍경은
오늘따라 더 맑고 고요하게 빛났다.
어쩌면 저 불빛이 천사의 불빛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큰 슬픔을 지나온 뒤 마주하는 아름다움은
늘 한 겹의 아릿함을 품고 있기에
그 반짝임조차 마음을 살짝 흔들어놓았다.
아침에 눈을 뜨며,
오늘 브런치에 어떤 글을 적을까 고민했었지만
부고 소식을 듣는 순간 모든 생각이 사라졌다.
그저 ‘인생무상’이라는 네 글자만이 마음에 떠다닌다.
집으로 돌아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더 행복하게 살자.
삶의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종종 잊은 채,
우리는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밀어붙일 때가 있다.
이런 날이면 더욱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깊어진다.
삶에는 기쁨이 겹쳐 찾아올 때도 있지만,
그 기쁨 뒤에 또 다른 아픔이 따라오는 순간도 있다.
세월을 살아가며 문득 찾아오는 두려움이
오늘 같은 날에는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살아간다는 건 아쉬움의 연속.
그럼에도 우리는 내일의 하루를 또 살아내겠지.
아쉬움 속에서도,
어쩌면 한참을 흐느끼며 또 하루를 건너갈지도…
삶이란,
그런 날들을 품어 안으며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