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덕수궁에 갔어요.
단풍은 가을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빛을 머금은 듯 궁 담벼락을 따라 반짝이고 있었어요.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계절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죠.
혼자 온 외국인이 사진을 한 장 부탁하길래 찍어주었어요.
익숙하지 않은 풍경 속에서 그 사람의 기억도 잘 담겼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오늘은 마음이 조금 비워져 있었어요.
요즘 들어 무기력에 자꾸 빠지곤 하거든요.
감기처럼 지나갈 거란 걸 알면서도, 그 무기력의 온기가 오래 머무네요.
그래서 그냥 두기로 했어요. 억지로 재촉하면 더 눌러앉을까 봐요.
있고 싶을 만큼 있다가 떠나라고, 그렇게 놓아두는 거죠.
겨울이 영원히 겨울이 아니듯,
언젠가는 다시 활력이란 해맑음이 찾아오겠죠.
그걸 아니까, 오늘은 억지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벤치에 앉아 먼저 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나뭇가지에 남아 있는 잎사귀, 아직 색을 품은 잎사귀,
이미 떨어져 버린 앙상한 가지들까지—
그 모든 모습이 하늘을 배경 삼아
마치 자연이 그려낸 한 폭의 풍경화처럼 걸려 있었습니다.
낙엽이 바람에 살랑이며 흔들리는 거 보고,
연못 위에서 오리 두 마리가 정답게 노니는 걸 보고,
속삭이며 걷는 사람들의 다정한 풍경을 보고,
궁 밖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의 확성기 소리에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어요.
그렇게 덕수궁을 천천히 걸었어요.
늦가을의 마지막 인사처럼,
단풍은 햇빛에 반짝이며 참 예쁘더군요.
자연은 언제나, 어떤 소설보다도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들어요.
사람이 사랑으로 산다 하지만,
자연이 주는 행복만큼은 비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무기력을 잠시 흙바닥에 내려놓듯 눌러두고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노래를 들었어요.
요즘은 내 마음의 글을 AI의 도움으로 음악으로 만들어 듣곤 하거든요.
울컥하기도 하고, 때론 아리다가, 때론 치유되기도 해요.
덕수궁에서 단풍을 보며 산책하면서
“아, 예쁘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요.
또 계절이 바뀌면, 간사한 마음으로 돌아가
눈 내리는 날 풍경에 반해 두 팔을 벌리고 반가워하겠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라고 말하면서요.
그렇지만 분명히,
오늘 덕수궁에서 본 가을의 끝자락은
내 마음 어딘가를 부드럽게 흔들어놓고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어요.
다음 주엔…
이 무기력 대신 작은 행복이 찾아오면 좋겠어요.
입가에 미소가 머무는 소소한 행복이면 더 좋고요.
오늘,
산책이 알려준 내 마음의 조용한 기도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