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와 몸무게의 동행
+8kg과 생애 첫 웨딩드레스
평생 찌고 빠져봤자 1~2kg이 전부였던 내 몸무게.
그런 내가 8kg이 찐 상태로 생애 첫 웨딩드레스를 입게 됐다.
40대 중반, 평소보다 찐 몸은 드레스 사이즈를 예측 할 수도 없었다.
해외에서 소규모로 결혼식을 치르기로 했기에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사진으로 본 현지 드레스는 문화적 특성인지 내가 계약한 회사의 스타일인지는 몰라도 ‘너무 영~’한 디자인. 이 나이에 입기엔 무리였다.
해외 결혼식, 결혼 준비,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상세히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잠깐, 썰을 풀자면. 나이 들면서 너무 개인적인 부분들이 회사 사람들이나 서로 얼굴 정도 아는 사람들에게 모두 오픈되는 게 성향상 싫었던 나는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소규모 가족식을 떠올렸었다. 그러다 20~30대 로망이었던 가족 해외 결혼식으로 변경한데에는 비용도 큰 역할을 했다.
다시 드레스로 돌아와.
3개월안에 원하는 드레스를 구할 곳은 별로 없었다. 게다가 이 나이에 하루 5군데씩 돌며 드레스를 갈아입는 건 상상만 해도 고역일 것 같아 2곳으로 압축, 3벌씩 총 6벌을 피팅했다.
결국 가장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골랐는데, 직원이 말했다.
“다이어트 하실테니 당일에는 핏이 정말 예쁠 거예요.”
속으로는 생각했다. ‘지금도 빼는 중인데 전혀 안빠져요.’
그리고 지금도 남편 폰 안에는 ‘백의 장군’이라 불리는 내 웨딩드레스 피팅 사진이 잠자고 있다. 이 사진을 기회를 봐서 반드시 이 우주에서 없애야 할 험한 것이다.
결혼식날까지 살을 뺐느냐고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오. 피팅때와 똑같은 핏으로 버진로드를 걸었습니다.
유럽 출장과 부종
결혼 1년 후, 유럽 출장이 연달아 이어졌다. 기업 파티를 위해 옛 파티 드레스를 꺼냈다. 36살에 업무차 입었던 새하얀 매머드 원피스였다. 타이트 할 거라 생각한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지퍼조차 올라가지 않아 출장 이틀을 남기고 급히 시커먼색의 펑퍼짐한 원피스를 구입했다.
2주 이상 이어진 빡센 출장. 원래 같으면 체력 소모로 3kg은 빠졌을 텐데, 이번엔 달랐다.
오히려 퉁퉁 부어 모든 사진에 ‘누구세요?’라고 묻고 싶은 여자가 있었다.
허무한 정상 판정 퍼레이드
출장 직후, 분명 몸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대학병원 신장내과를 찾았다. 결과는 ‘정상’. 여성병원에서 대사증후군 검사도 받아봤지만 역시 정상.
작년과 올해 연속으로 건강검진에서 당뇨 전단계와 요산 수치 관리군 판정을 받았던 걸 떠올리고, 혈당 관리기를 구입했다. 음식 조절과 식후 운동으로 혈당사파이크는 잡았지만, 살은 빠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다른 팀 부장이 애사비를 추천했다.
“이거 먹고 혈당도 잡히고 살도 빠졌어요. 염증 살 빼는데는 이게 최고래요.”
하지만, 3주 만에 찾아온 극심한 위경련.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 선생님을 찾았다.
“위가 약한 사람은 애사비 절대 금지입니다.”
막막한 마음에 혹시나 하고 물었다.
“그럼 위고비는요?”
“평균 몸무게인 사람에게 위고비를 권하지 않을 뿐더러 부작용 중 취장염이 있는데 담낭제거한 분들은 이미 췌장을 많이 괴롭힌 상태라 더 위험해요.”
그 후, 4개월 -7kg
나는 챙겨간 건강검진 CD를 내밀며 방법을 찾아달라고 매달렸다.
의사 선생님은 기본을 말했다.
‘소식’, ‘운동’, ‘충분한 수분 섭취’, ‘수면’, ‘고기양 줄이기’.
친구들이 닭학살자라고 부를만큼 치킨을 좋아하고 고기 없는 반찬은 흥미가 없을만큼 육식동물인 내게 ... 나름 담낭 제거 후에도 고기 소화를 잘 시켜 의사 선생님께 “좋은 장기를 가지고 있다”라는 말까지 들었던 내게 ‘고기양 줄이기’는 너무 어려웠다.
그런데 4개월이 지난 지금, 나의 몸무게는 최대 몸무게에서 –7kg.
중년이 되면 기초대사량이 줄고 소화기관도 약해진다고 한다.
의사 선생님의 조언과 내 나름의 생활방식 변경은 근 3년째 꿈쩍도 안하던 체중계의 숫자를 끌어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