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개 빠진 몸과 쓸개 있는 마음

요란하지 않은 결혼, 나답게

by from퐁당

스무 살, 결혼을 이야기하다

“내가 결혼을 한다면...”

왜 이런 대화를 했었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지만, 20대 때 친구들과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한 친구는 계곡 근처 백숙집을 통째로 빌려서 개그맨의 사회로 하루 종일 신나게 놀면서 맛있는 것을 먹는 프리스타일(?)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한 친구는 야외 웨딩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이 친구는 20대에 야외 웨딩을 했다. 그런데, 바람이 너무 불어 신부 헤어메이크업이 엉망이 되었었다. 지금도 그 친구 웨딩 단체 사진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평소 단발머리였던 이 친구가 결혼식에 긴머리 가발을 쓰고 반묶음 머리를 했는데 그 긴 머리가 바람에 한껏 휘날렸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 가장 쎈 바람이 분 날이 아니었나 싶다. (만일 야외 웨딩을 계획하는 예비신부라면 올림 머리 강추)

다른 친구들은 신랑과 양가 부모님들과 논의해 진행하겠다고 현실적인 답변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생각보다 낯을 가리기 때문에 (평소 내가 낯을 가린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나는 아주 심하게 낯을 가린다) 가족들만 참여하는 해외 결혼을 하겠다고 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해외’가 목적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최소 인원으로 하겠다는 게 목적이었다. 멀면 멀수록 올 사람이 줄어들테니 말이다.


시간이 데려온 결혼식들

아무튼 기억에도 가물거리는 저 대화를 한 이후로 우리는 단 한번도 결혼의 결자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야외 결혼식을 올린 친구 외에 10여년이 넘도록 아무도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서른여섯살 즈음 되었을 때, 신랑과 양가 부모님들과 논의해 진행하겠다던 친구 하나가 자신의 고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양가 식구들과 친구들, 회사 동료들이 모두 축하하고 신랑 친구들이 신부 친구들 테이블에 찾아와 인사를 건내기도 하는, 오랜만에 만나는 동창들의 모습도 반가웠던 결혼식이었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나 서른 아홉의 나이에 역시 양가 부모님과 논의해 진행하겠다던 또 다른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앞선 친구처럼 반가운 이의 얼굴도 보고 친구 부모님께 축하 인사를 담뿍 해드렸던 기억의 결혼식이었다. (친구가 결혼 못할 줄 알았다며 너무 좋아하셨다. 더불어 시집 안가냐고 아직 미혼인 몇 명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신 날이었다)


친구 결혼식을 제외하면 대부분 회사 동료들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초기에는 선배들의 결혼식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며 동기들의 결혼식에서 후배들의 결혼식으로 자연스럽게 세대 교체가 되었다.


점차 “너는 왜 안가”라는 질문에서 “연애는 하니?”를 거쳐 “혹시 여자 좋아하니?”까지 다양한 질문이 다채롭게 펼쳐졌다.


아무튼, 나는 해외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이후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신랑이 외국인이야?”였다. 신랑은 토종 한국인이며, 오히려 위에 언급한 친구 중 외국인 신랑이 있다.


남편과 동갑내기인 나는 결혼에 대해 별다른 want가 없었다. 그랬던 우리가 결혼한 이유는 조금은 시덥잖은 이유였고 결혼을 결심하자 의기투합하듯 ‘간단하게’, ‘요란하지 않게’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