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주 쓰는 단어가 나의 세계를 어떻게 형성하는가?
경쟁과 거리가 멀다는 것, 이게 내가 어릴 적부터 요가와 오래 달리기를 좋아한 이유다. 요가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요가 수업에 들어가면 “옆사람을 보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합니다”라는 말을 수시로 듣는다. 외부로 향하는 시선을 내부로 돌리라는 말도 연거푸 듣는다. 움직임만 남기는 연습을 하다 보면 숨이 내 안으로 계속해서 접혀 들어가 가지런히 정돈되는 느낌이 든다. 새벽 일찍 학교에 가서 아무도 없는 텅 빈 운동장을 열 바퀴 정도 뛰었던 경험도 비슷한 효과가 있었다. 들숨과 날숨에 집중해 호흡의 박자를 고르며 뛰면 손끝과 발끝이 방금 태어난 날 것의 심장처럼 생생해지는 기분이다.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가고 싶다는 욕망과 살아있는 동안 오롯이 살아있고 싶다는 욕망이 또렷해진다. 하고 많은 욕망 중에서도, 내가 선택하고 싶은 욕망이 무엇인지가 분명해진다.
오래 달리기는 아니지만 요가는 주기적으로 수련해 왔다. 매일 쌓이는 머리카락과 먼지를 청소하듯이, 매일 음식을 먹은 뒤에 칫솔질을 하듯이, 알아차림도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알다시피 우리는 ‘옆사람을 보며’ 경쟁하는 일상을 빈번하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매번 모든 것에 이길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삶의 층위는 보다 입체적이다. 경쟁 심리 자체는 단순히 좋고 나쁘고의 영역이 아니나 여기에만 매몰되면 다른 중요한 가치들을 놓치게 된다. 인생이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는 것, 세상에는 다양한 정답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 우리는 서로의 안전기지가 되어줄 수도 있다는 것…. 이런 생각에서 비롯해 내가 인사말로 주로 꺼내는 단어는 따뜻함과 편안함이다. 허튼 사랑을 좋아할 것 같은 이에게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언어의 온도를 낮추는 게 더 편할 듯한 상대에게는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말이라는 포장지를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에게는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쓴다. 인사말을 쓰는 나의 세계부터 따뜻하고, 편안하고, 좋은 마음이 솟아난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경쟁 심리가 없었지만 그런 내 안에도 ‘더 잘하고 싶은 욕망’이 걷잡을 수 없이 과해지는 때가 있다. 일을 더 잘하고 싶고, 글을 더 잘 쓰고 싶고, 일상을 더 정갈하게 살고 싶다. 욕망만 과해지면 지금 할 수 있는 작지만 힘 있는 행위가 보이지 않고 여태 잘해오던 것이 있었는지도 오리무중 알 수 없게 된다. 그러면 달리기 전에 신발끈을 동여매듯 한 번 더 주위의 온갖 자연을 둘러보며 자뭇 무위를 배운다. 애쓰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는 상태, 집착하지 않지만 멈추지 않는 상태, 과하게 개입하지 않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상태, 바꾸려 하기 전에 조급함을 내려놓는 상태를. 별이나 달, 파도나 노을을 눈과 사진기에 담는 일은 단지 감성을 챙기는 일만이 아니라 균형을 잡는 행위이기도 하다. 가부좌를 틀고 엄지손과 검지손을 맞대 원모양을 만든 뒤에 척추를 곧게 세우고 스르르 눈을 감는다고 짜잔- 하고 완전히 해탈되진 않는다. 다만 생각과 반응 사이에 속도를 늦추고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에 내가 선택한 태도를 다시 심게 한다. 나를 테트리스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