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저를, 당신을, 세상을 잠깐 본 것 같아요.“
인생의 방향을 바꾼 거대한 선택이 아니라, 돌이켜보니 지금의 나를 만든 작은 선택이 있다. 메모다. 어릴 때부터 메모하는 걸 좋아했다. 사람들과 술자리를 하다가도 잠시 밖으로 나가 휴대폰 메모장을 켜고 빼곡히 적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가 번쩍이는 섬광 같아서다. 개별성 속의 보편성, 보편성 속의 개별성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만들어내는 문양을 좋아한다. 삶은 언제나 말보다 크지만 그 삶이 말속에 절묘하게, 넘칠 듯 말 듯, 찰랑거리며 담기는 순간을 사랑한다. 친구가 자주 하던 말이 있다. “넌 인류애가 있는 것 같아.” 대부분은 맞는 말일 것이다. 내 인류애는 여러 형태 중에서도 수북한 메모로 남았다. 무작정 남겼다. 사람들이 아까워서였다.
어린 시절 좋아했지만 지금은 좋아하지 않는 것도 많다. 그런데 삐뚤빼뚤 글씨 쓰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애정을 유지하는 습관이 메모에 이어 말과의 실랑이다.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내 안의 심장이 스르르 자세를 바꾸지 않던가. 그 심장의 모양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담을 수도 있을 텐데, 나는 늘 ‘은’과 ‘는’ 사이를 오간다. “이건 ‘은’이야. 아니다, ‘는’인가. 에잇, 모르겠다.” 보통 처음 떠올린 ‘은’을 고른다. 기준은 모호하다. 달리 배운 적도 없고. 다만 분석으로 파헤치는 모습은 원치 않는다. 이 안에 마음이 있다는 걸 잊지 않은, 사람을 업고 있는 말이길, 삶에 충실한 말이길 살핀다.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은 많은데 그중에서도 왜 언어인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왠지 더 부서지기 쉬운 형태 같았다. 말에 지나치게 동화되는 걸 경계하면서도, 최종 도안을 제시하지 않는 말에 좀 더 이끌렸다.
우리 안엔 사랑이 아닌 것들도 있다. ‘사랑해야 하나?’ 한숨 쉬는 날도 있다. 근데 살아있는 동안은 아무래도 사랑하고 싶다.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어’가 아니라 ‘분명 사랑도 있었어’라고 말하며, 준 것보다 받은 것들을 기꺼이 더 많이 기억해내고 싶다. 그러니까 내게 글이란 섣부른 고백이었다. “아마도 저를, 당신을, 세상을 잠깐 본 것 같아요. 저에게 저는, 당신은, 세상은 이런 모습이었어요.” 보이지 않는 풍경을 감상하고 다른 세계와 공명하는 일. 그것이 어린 시절의 메모였다가, 말과의 실랑이를 거쳐서, 지금은 글쓰기가 되고 있다. 여행지에서 정신없이 메모하고 있으니 누군가 물었다. “혹시 책 내시는 거예요?” 카페에서 하루 종일 타이핑하고 있으니 사장님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물어보셨다. “혹시 작가세요?” 무엇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이건 내가 주어진 세상을 사랑하는 연습이다. 조금 더 잘 고백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몰라 골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