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삿포로 여행기
눈 쌓인 비에이 투어
으윽 몸이 무겁다. 투어가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 거의 회사 가는 시간에 일어나려니 죽을 맛이다. 비에이에는 눈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거의 종아리까지 푹푹 빠진다고 한다. 언니에게서 빌려온 방한 부츠를 신고, 발바닥에는 붙이는 핫팩, 주머니에는 주머니용 핫팩을 챙긴다. 목도리도 잊지 않고 두른다. 꽁꽁 완전무장을 하고 나니 시간이 촉박해 서두르던 찰나, 교통체증으로 인해 가이드가 10분 정도 늦는다는 카톡을 보냈다. 휴 다행이다. 거의 하루 종일 바깥에 있어야 하는 일정이라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바깥으로 나선다.
바깥에 나와 몇 걸음 걷자마자 왜 가이드가 늦는다고 한 건지 이해했다. 전날 새벽까지 함박눈이 계속 내렸었는데, 오늘 아침은 눈 없이 아주 청명하다. 이 말은 즉 전날 내린 눈이 모두 얼어 온 길이 스케이트장이라는 뜻이다. 걷기도 힘든데 세상에 운전은 어떻게 하는지! 삿포로에서는 눈이 워낙 많이 내려 그런지 길에 모래도 거의 뿌리지 않는다. 그저 안전운전, 안전 걸음인 것이다. 조심스레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뎠다. 생각보다 내 걸음은 느렸고 엉덩방아를 찧을 위기를 열 번은 족히 넘겼다. 조심히 걷다 보니 생각보다 모임 지점까지 오래 걸렸고, 결국 오분 가량 늦고 말았다. 모두들 정말 죄송해요..
투어는 총 네 명에 가이드 두 명까지 총 여섯 명으로, 작은 승합차를 타고 진행되었다. 비에이 투어는 주로 대형 관광버스에 몇십 명씩 타고 진행되는 지라 시끄럽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점이 싫어 걱정되었는데, 이 투어는 소규모 투어인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후다닥 차에 탑승하여 가이드분의 안내 설명과 함께 투어는 시작되었다. 날은 맑았고, 눈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온통 하얀 세상에서 눈을 뚫고 달리는 것은 마치 3d 체험인 듯 현실감이 없었다.
꽤 오랜 시간을 달려 첫 코스인 마일드 세븐 언덕에 도착했다. 이 언덕은 마일드 세븐 담배 광고에 나오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에 자작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아, 비에이에 올 때 선글라스를 챙겨 오는 것이 이제 이해가 되었다. 어디를 보아도 온통 흰색이라 눈이 부셔 눈을 질끈 감았다. 내 생에 이렇게 많은 눈을 본 적이 있을까? 아직 많은 나이를 살진 않았지만, 내가 살면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본다는 건 너무 즐거운 일이다. 문득 눈밭으로 달려 나가 뒹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아마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닐 거야. 애써 이 야성적인 욕망을 집어넣고 눈밭 위에 내 발자국만 열심히 남겼다. 몇 분 뒤면 사라질, 내가 있었다는 흔적을.
다음 코스는 켄과 메리의 나무. 이 나무는 70년대 닛산 자동차 광고에 나왔다고 한다. 그 광고에 나오는 인물이 켄과 메리라 그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마치 마녀의 빗자루 같은 신기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차에서 내려 조금 구경하는데 다들 아까보다 왠지 모르게 적극적이지 않다. 멀리까지 걸어 나가지도 않고 차 주변을 뭉그적 맴돌며 서로 괜히 사진만 찍어준다. 가이드가 이런 우리를 스캔하며 말을 꺼냈다.
“이제 식사하러 갈까요?”
아마 이 가이드분은 정말 베테랑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