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삿포로 여행기
몸이 녹는 스프카레
백화점 구경을 하다 보니 슬슬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삿포로에서 먹는 첫 한 끼로 뭘 먹으면 좋을까? 바깥은 눈보라가 몰아치고 아직도 내 머리는 촉촉하다. 바지 밑단은 여전히 젖어있고, 이따가 숙소로 돌아갈 여정이 조금 걱정되는 상황. 이럴 땐 김이 폴폴 나도록 뜨거운 국물이 있는 음식이라면 내게 든든한 힘이 되어줄 거야.
삿포로에서 다들 꼭 먹는 유명한 음식이 있다. 바로 스프카레!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카레와는 조금 다른데, 국물이 많은 스프형태의 카레에 고기, 야채 등 다양한 재료들을 넣고 푹 익힌 음식이다. 나는 카레를 아주 좋아하진 않지만 일반 카레와는 다르다는 그 맛이 궁금했고, 익힌 야채를 좋아하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했다.
나는 여행 오기 전에 많은 스프카레 맛집을 찾아보고 왔다. 여기는 양고기가 다른 곳 보다 부드럽다고 하고, 여기는 맛이 좀 한국스럽다 하고, 여기는, 여기는,,,,,, 내 구글맵에 모두 별표 표시를 해두었지만 막상 보니 다들 여기서 거리가 꽤 된다. 올 때도 힘들었는데 또 밥먹으러 이동...? 첫날 첫 끼라 너무 무리하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야. 여행 오기 전에는 포부가 제법 있었지만 막상 와 보니 내 본성이 다시 슬금슬금 되살아난다. 윽 귀찮아...... 기왕이면 백화점 안에서 모두 해결하고 싶어 식당가를 둘러보았다. 척 봐선 다 맛있어 보이긴 하는데. 마침 스프카레 가게가 하나 보인다. 내부에 사람도 꽤 있고 메뉴도 무난해 보인다. 구글맵에서 가게 평점을 보니 뭐 제법 괜찮다. 이렇게 큰 백화점 안에 있으니 평균 이상은 하겠지! 능숙하게 귀찮음을 합리화하고 당당히 가게로 입성했다. 그런데 내 앞을 막아서는 친절한 직원. 네? 아... 웨이팅 해야 한다고요? 넵... 하잇. 그래 맞아 여기 맛집 맞나 봐.
짧은 기다림 끝에 직원이 들어오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히토리 데스!
(한 명입니다)
더 많은 질문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먼저 선수를 쳤다. 일본어 못하니까 제발 이것저것 묻지 말아 주세요... 어떤 메뉴를 주문할지 고민하다가 닭고기와 기본 야채들이 들어간 베스트 메뉴를 주문했다. 잘 모를 땐 베스트를 고르는 것이 실패 확률이 낮다. 밥 양을 선택할 수 있는 듯 해 당당히 손가락으로 ‘대’ 자를 가리켰다. 배고프니까 큰 걸로 주세요.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꽤 빨리 음식이 나왔다. 스프카레가 내 앞에 놓이자마자 나는 깨달았다. 이건 지금 내가 먹고 싶었던 바로 그 음식이야! 완벽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국물을 한 스푼 떠서 삼켰다. 진한 닭 육수 베이스와 야채에서 우러나온 달콤한 카레 맛. 내가 알던 카레보다 훨씬 깊은 맛이다. 오래 끓인 듯 진하지만 전혀 자극적이지 않고 너무 맛있었다. 닭고기는 전혀 냄새나지 않고 부드러웠고, 푹 익은 가지, 옥수수 등 야채들도 카레의 맛이 알맞게 배어들어 색달랐다. 특히 겉을 바삭하게 구운 브로콜리를 카레에 푹 적셔 먹는 게 환상이었다. 이런 게 바로 겉바속촉(겉은 바삭 속은 촉촉)인 건가. 왠지 아플 때 먹고 싶은 맛이다. 춥고 눈이 많이 오는 삿포로라는 도시에 너무 잘 어울리는 음식. 나는 현재 상황에 딱 맞는 음식을 먹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 건지 안다. 스프카레는 따뜻하게 내 뱃속을 채워줘 눈보라를 뚫고 숙소에 갈 때까지 힘이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