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 고딘, 『보랏빛 소가 온다』
헤어짐을 맘 먹는 것이 어려울 때마다 괜찮아지려고 노력하며 속삭이는 한 마디가 있다. ‘세상은 넓!고! 좋은 사람은 많!다!’ 반대로 생각하면 역시나 세상은 너-무 넓고, 나는 그 한 사람한테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인가? 하고 촘촘히 더듬어보게 된다. 누구나 타인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때로 한 번의 관심은 그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기도 한다. 이를테면 생각지도 못한 변수를 만들어 낸다거나, 필연적으로 주어진 기회의 방향을 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관심은 간절하고, 어떤 기회는 절실하다. 품위를 지키고 싶지만 때로 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나는 나를 둘러싼 프레임을 과할 정도로 무리해서 장식한다. 몸값을 올리기 위해 ‘세상은 넓지만 나는 하나’, 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어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품을 많이 들이는 모양새가 노출될수록 격이 올라가는 것인지, 요즘의 나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내 브랜드에 품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세상에 인연은 많지만 그 중에 나를 추종해 줄 이들은 우연으로 시작했더라도 필연-서로간의 노력-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거다. 그리고 관계의 지속성에는 남들에게는 없는 무언가, 나의 ‘브랜드’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결국 추종 받기 위해서는 상대를 전략적으로 꼬실 줄 알아야 한다는 거다. 이를 테면 ‘소설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이미 국내외에 차고 넘치기 때문에 소설가 ‘민정’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러나 2024년 전국을 통틀어 (두번째) 최연소 소설 당선자이자, 5년차 UX라이터로써 사람들에게 생소한 분야인 UX라이팅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는 20대 젊은 소설가 ‘민정’이라는 차별성을 둔다면 어떨까. 게다가 소설가하면 떠올리게 되는 묵직함을 과감히 버리고, 음악/패션 등에 관심이 많은 MZ세대이자 여전히 성장 중인 청년의 이미지에 사회구조적인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할 줄 아는 트렌디한 작품을 쓰는 ‘힙한 소설가’라는 타이틀은 또 어떨까? 나름대로 고민해봤지만 여전히 나만의 차별성을 명확히 정의내리는 것에 대해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결국 다시 돌아와 ‘민정’은 어떤 사람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세스 고딘의 <보랏빛 소가 온다>를 읽으면서 기억에 남았던 것은 ‘퍼플카우’와 ‘리마커블’이라는 워딩이었다. 사실 두 워딩은 결국 동일한 의미이지만 ‘상품’과 ‘브랜드’로 나누자면 조금 결이 다르게 의미를 나눌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퍼플카우’는 현재 나 역시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나는 내 작품을 상업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토리텔러로써 더 많은 이들에게 선보일 수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 대중에게 어떻게 하면 나의 세계관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텍스로만 즐길 것이 아니라 IP를 적극 활용하여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와 매체로 변주되는 것을 원한다. ‘퍼플카우’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글을 다루는 지면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르문학 전문 웹진부터 브런치, 순문학 잡지까지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와 장르의 글을 시도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조형 전시와 협업도 해보고 싶고, 작사도 해보고 싶다. 언제나 내 작품이 영상화가 되는 순간을 꿈꾸기 때문에 작품을 쓸 때는 늘 시각적인 요소를 고려한다. 일상의 모든 곳에서 영감을 받으려 노력한다. 심지어는 하찮다고 생각했던 술자리나 별 시덥지도 않은 플러팅에서도 영감을 받는다. 나의 목소리는 크레이프 케익처럼 늘 타인의 시선 속에서 겹겹이 완성된다.
한편 ‘리마커블’은 작품이 아닌 ‘민주‘라는 브랜드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제 출판 시장에서 주목 받는 작가의 사례를 연구하고 분석하다 보면 작품을 보고 작가를 덕질하기 시작하는 독자가 있는가 하면 작가를 보고 작품을 덕질하기 시작하는 경우도 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SNS가 일상에 크게 자리매김한 지금, 작가는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기능만이 아닌 실제 독자와 폭넓게 소통하며 영향력을 발휘하는 하나의 ‘아티스트’로서의 역할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때 이들이 갖는 ‘영향력’은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어떤 목적이 아닌, 팬으로 하여금 실질적인 소비 욕구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른바 ‘손민수 효과’ 같기도 한데, 매력이 넘치고, 자꾸만 눈길이 가는 인플루언서를 발견하게 되면 그 사람이 애정하는 상품을 추종(팔로우)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후에는 그 사람의 생산물에 자연스레 구매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민주’라는 사람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깊어진 상태에서 ‘민주’가 쓴 콘텐츠엔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콘텐츠에 부족함이 많더라도 성장하는 모습 자체를 추종하게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과의 다음을 약속하고 싶은 마음. 그 사람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 것을 내어주고 싶은 마음. 이것은 결국 돌고 돌아 사랑해주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것 아닐까?
팬덤의 사전적 의미는 ‘누군가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팬들의 모임’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시간과 자본이 필요하다. 1시간을 주행하더라도 크리스피 도넛을 먹기 위해 달려 오는 사람들은 해당 브랜드에 ‘시간’과 ‘자본’을 들인다는 것이다. 그 평범하고 무용하기만 한 설탕 발린 빵을 먹기 위해 말이다. 누구든 스스로가 아닌 타의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브랜드가 사랑받길 원한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의 욕구가 아닌 ‘방랑’할 용기다. 내게 시간을 내어 추종해줄 사람을, 시장을 파악하고 무엇이든 시도해 보는 것. 그리하여 나만히 해낼 수 있는 가치를 생산할 것. 사랑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나의 매력을 어필할 것! 그러니 지금은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격을 세울 것이 아니라 몸을 최대한 낮춘 채 품을 들일 때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느냐고? 답은 이미 책에 나와 있다.
‘재투자하라. 다시 하라. 맹렬히 하라. 또다른 퍼플카우를 내놓아라. 실패하고 또 실패하라.’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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