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밀라 팡,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최근에 제게 소원 부적이 생겼습니다. 저보다 네 살 어린 귀엽고 깜찍한 부사수님이 연말 선물로 추천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1년 가까이 돌아가며 발제를 하고, 책을 함께 읽는 모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멤버들이라고 말하고, 누구누구씨라고 덧붙이지만 저의 내적 친분으로 그들을 ‘언니즈’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아직 여덟 번밖에 보지 않았지만 다정하고 자상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벽돌책도 읽고, 얇은 책도 읽습니다. 책을 읽고 만나지만 준비해 온 발제가 무색하게 주로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않는 고해성사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들 뜻하지 않게, 장녀거든요.
몇달 전엔 모임장 언니의 생일이 있어 나름대로 좋아하는 마음을 부담스럽지 않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축하를 해주고 싶어 오예스와 해피버스데이 초를 사왔습니다. 노멀한 크기인 줄 알았더니 오예스는 예상치 못하게 미니 사이즈였고,(패키지를 왜 그따구로 헷갈리게 만들어서) 해피버스데이초는 그에 비해 무지막지하게 커서 당황했으나 언니는 황당해하지 않고 너그럽게 나를 귀여워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멤버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엽서에 좋아하는 책의 글귀를 하나씩 써줄까 하다 아트박스에서 부사수님이 추천한 소원 부적을 발견했습니다. 아무래도 무용한 책 얘기보다는 소원 부적이 더 매력적인 선물이 아닐까 하여 멤버의 수에 맞게 구매했는데, 모임 당일 오기로 했던 멤버 두 명이 불참하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부적 두 개가 남아버렸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 하나는 제 소원을 빌어보기로, 나머지 하나는 제 소원과 관련 있는 사람에게 줘 보는 것으로 하자, 하는 결심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평소 소원을 잘 빌지 않는 편입니다. 가능한 것들은 노력으로 기회를 쟁취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시험에 합격하게 해달라거나, 다이어트에 성공하게 해달라는 것 같은 진부한 바램은 사실 소원을 비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격을 얻고 싶다면 능력을 키우면 되고, 의지를 갖고 싶다면 독한 마음을 먹으면 됩니다. 그렇지만 인력으로도 안 되는 것들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저는 극강의 ENTJ이기에 사람을 잘 보는 편입니다. 조금만 대화를 나눠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쉽게 파악이 되는 비운의 능력을 지닌 술사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람을 아는 것과 그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입니다. 제 소원은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카밀라 팡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을 읽는 동안 어렵게만 느껴졌던 용어들과 개념의 바운더리가 제법 발로 밟고 넘어갈 수 있게끔 쉽고 단순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녀가 말하는 과학적 사고는 우당탕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는 우리의 머리가 컴퓨터라고 한다면 틀에 박힌 사고 속에서 발전성을 기대하기보단 무한히 수용한 정보를 바탕으로 조금 더 입체적인 사고를 하는 인간이 될 것을 기대합니다. 한편으로 그녀가 진단받았던 자페스펙트럼장애와 ADHD는 이러한 사고에 오히려 유용한 효과를 가져온 것 같다고 답하기도 합니다. 다수의 사람이 ‘확실성’에 기댈 때 소수의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불확실성’이라는 혼돈이 그녀의 과학적 사고를 강화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편으로 머신러닝의 개념과도 유사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5장의 ‘상쇄간섭’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파동이 서로를 간섭하는 데 있어 서로를 증폭할 수는 있어도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었습니다. 작가는 그 예로 노이즈캔슬링을 들었는데, 두 파동이 만나 아무것도 아닌 낫띵의 상태로 변주됨 그 자체를 ‘위상’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시하기 쉬운데, 과학자로서의 작가는 이를 놓치지 않고 ‘발견’합니다. 역시 소수이지만 입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파동은 보편적인 많은 파동과 중첩되었을 때 상호작용이 더 크게 발생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왕 분량을 많이 초과한 김에 재밌었던 개념 하나만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6장에서 작가가 오래도록 해왔던 질문, ‘인간의 행동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인가, 아니면 순응적인가? 자신만의 리듬을 따라 움직이는가, 아니면 군중의 리듬을 따라가는가? 우리는 구름을 이루는 먼지 입자 중 하나인가, 아니면 무리에서 벗어난 이상치인가?’(p.127)는 평소 제가 하루에 30분씩 9.9의 속도로 러닝머신을 뛰며 자주 하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인생에서 선험적 판단을 내려야 할 때마다 사유하는 것이기도 한데요. 대체로 저는 결정적인 순간에서 ‘어차피 백 년도 못 사는 게 인간이야..’를 전제로 판단을 내리는 편입니다.
그러니 순응적이기보다는 개인적인 것을, 군중의 리듬을 따르는 것보다는 우주먼지보다 못한 개체로써 ‘주체적인 삶’을 선택하는 데 애쓰고 있습니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인데요.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역시나 군중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예술 전공을 한데다 대중에게 제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직업을 택함으로써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습니다. 학부 시절에는 겉으로는 당차고 호기로운 척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에 제법 받았던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저는 저를 세상에 드러내는데 두려움이 있습니다. 학과 수석은 결국 특이점이 있는(도라이) 한 명만 나오듯 군중과 개인이 늘 일치할 수는 없기 때문인데요. 작가 역시 비정형성의 세계에서 정형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연구했던 ‘브라운 운동’은 마치 대중의 트렌드를 읽으라는 뜻으로 여겨졌습니다. 대중을 분자화한다면 각각의 의사까진 어림잡을 수 없지만 전체적인 결과 정도는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이 개념의 핵심 같았습니다. 미시적인 관점의 한계를 거시적으로 보완하라는 의미겠지요.
저는 평소 어딘가에 소원을 빌어야 한다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는 허무맹랑한 것들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이를테면 편의점에서 한정판 오이호빵을 발견하게 해주세요, 라던가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 이브이자 제 생일에 선물로 단팥빵을 받고 싶다거나 하는(카카오톡 위시리스트에 단팥빵을 추가해 놓았습니다) 것들에 주로 소원을 빕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소원을 빌었느냐면, 저와 소원 부적을 나눠가진 사람과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빌었습니다. 아, 오해할까 봐 미리 밝혀두는데 진짜 말 그대로 “친구”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 사람은 키도, 나이도, 지식도, 생각의 깊이도 저보다 한 수 위 같습니다. 그래서 멋있었습니다. 저는 사회성을 학습한 엔티제이기에 본래 낯을 제법 가리고 말을 잘 놓지 못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종종 그 사람과는 말을 놓는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오래 유지되는 관계보다는 스쳐 지나가는 관계가 더 많아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지만 간혹 놓치고 싶지 않은 인연도 있지 않습니까. 소원 부적은 이런 곳에 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의 소원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듣자 하니 투자에 미치광이 같았는데 아무래도 개인의 성장이나 성공을 위해 빌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소원을 곧바로 떠올리지 못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욕심이 굉장한 칭구인 것 같습니다. 이뤄지면 서로 알려주기로 했는데, 과연 제 소원이 이뤄질 수 있을까요? 6개월 안에 소원이 이뤄진다고 했으니 한번 믿어보겠습니다. 사실 이뤄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이번엔 애써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운에 기대어 보기로 했거등요.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