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민주 Mar 01. 2024

‘이기적’인 선택? 이 ‘기적’인 선택!

장영화, 『커리어 피보팅』

내가 아는 어느 카페는 2014년도부터 해리포터의 빈티지 상품들과 굿즈로 도배되어 있다. 좁은 공간의 한쪽엔 온종일 해리포터 영화 시리즈가 상영된다. 생각이 많아질 때면, 그곳에서 입 안 가득 달콤함을 간직한 캐러멜 팝콘과 시원한 페퍼민트 티를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해리포터와 헝거게임, DC세계관에 일찍이 마음을 뺏겨 버린 나지만 주인장 언니는 나보다 더한 덕후다. 그곳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마법 주문을 발음해 보게 된다. 그중에 하나가 ‘루모스.’ 알만한 사람들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루모스’는 빛을 내는 마법 주문이다. 지팡이를 살짝 휘두르며 루모스, 하고 속삭이면 금세 주변이 환해진다.


 주변을 환하게 만든다는 것.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 언제나 나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꿈꿨다. 내게 20대는 제법 어두웠다. 내가 지나온 시절을 나와 같은 환경을 타고난 친구들이 동일하게 겪지 않았으면 했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그리고 나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까지도. 그래서 내가 글을 쓰는 모양이다. 복잡한 생각들을 털어낼 곳이 백지뿐이어서.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키보드뿐이어서. 내가 허우적거렸던 세계의 파도에서 함께 절박하게 흔들리고 있는 이들을 구하고 싶어서. 나처럼 고생하지 않았으면 해서. 나는 그런 글을 쓸 때 마음이 채워진다. 즐겁다. 행복하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나와 맞는 일이다. 역시나 소설을 쓰는 것은.


 장영화 작가의 『커리어 피보팅』은 내가 살아오던 세계관을 과감히 깨부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절대로 깨질 리 없을 것 같은 금기를 깨는 일. 소설로 따지자면 ‘판타지’ 장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내 전공으로는 절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직종으로의 커리어 전환.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할 것 같지만 꾸준하고 힘차게 도전하며 결국 인정받는 일.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그동안 내가 ‘커리어’를 대하는 자세에 ‘성장’과 ‘배움’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지금껏 부사수님들에게 나는 항상 스터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대학 졸업하고 공부랑 연 끊은 것 같죠? 그런데 아니야. 발전하기 위해서는 평생 공부해야 해. 그러나 그 말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시즌을 통틀어 생각에 변화가 이루어진 부분이 있다면 ‘커리어’를 대하는 자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점이다.


 내가 보았던 많은 멜로와 로맨스 영화에서 ‘사랑’은 결코 ‘성장’과 ‘배움’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은 어쩌면 운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기회를 잡는다고 해서 온전히 얻을 수 없듯, 내가 내 일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봇(pivot)의 사전적 의미가 ‘물건의 중심을 잡아주는 축’이라고 했던가. 내가 나를, 나의 위치를, 나의 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나’를 사랑하고, 나의 ‘일’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기심과 관심은 사랑의 시발점이다. 그런 것들은 노력과 만나면 결국 기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드는 일을 발견한다면 지금 당장 커리어 전환에 뛰어들어도 괜찮겠다. 분명 성과가 있을 것이다.


 커리어 피보팅 과정에서 가장 단호하게 언급하는 점이 있다면 변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당장의 경제적인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 역시 14년 동안 수익이 없는 글을 써오면서 느낀 점이 있다. 글을 쓰는 일은 때로 ‘나’라는 개인의 인생을 뭉개는 일 같았다. 퇴근 후, 그리고 주말엔 온종일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한량한 선비처럼 방 안에 틀어박혀 철 지난 문학을 읽거나 시시껄렁한 문장들을 나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산업에 마이너스만 내고 있는 스타트업의 현실과 무엇이 다를까.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실패를 향해 헤딩하는 듯한 이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에 우리는 왜 자꾸만 도전하려 할까. 나는 글을 쓰면서 나의 20대를 잃어버린 듯했으나 20대의 마지막 해엔 깨달았다. 내가 한 편의 완성된 글을 보는 것보다 안정감을 주는 공간에서 내가 지니고 있는, 나를 관통한 생각들을 풀어내는 그 과정 자체를, 그를 통해 인간으로서 성장한 내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세상의 공평함을 믿는다. 모든 선택지에는 얻는 것과 잃는 것이 균등하게 존재한다. ‘세상의 변화가 빨라지고 불확실성이 커지는 지금의 상황은 누군가에게는 불편과 불안의 시작일 수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 어쩌면 우리가 갈증을 느끼고 있는 지금의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기적인 선택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군가에는 더 큰 성공을 향한 도전’이자 도약을 하기 위해 감수한 고통은 때로 이 기적 같은 결과를 가져올 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는 세계를 과감히 깨부수고, 새로운 세계로 용감하게 나아가는 일. 때로 커리어는 우리의 인생에서 방랑의 물결로 흔들릴지 모르겠지만 일을 사랑하는 즐거움에 몸을 흔들게 만들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다같이 외쳐보자. ‘루모스’ 하고. 나를 빛나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생각하다 보면, 그 발광의 몸짓에 어느새 주변이 ‘루모스’하고 환해질 테니까.


이전 16화 덫 같은 마음으로 산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