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 게 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많은 것들이 적응되었고 이젠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집에서 지내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혼자 사는 게 편해졌다. 하지만 집 안의 정적만은 적응되지 않는다. 외출하고 들어오거나 누군가와 같이 있다가 혼자 있을 때는 그 분위기가 반전되어서인지 유독 더 정적이 민감하게 느껴진다.
지방에서 자취할 때는 자취방에 티비가 설치되어 정적을 느낄 틈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일정을 미루고 티비만 본다는 부작용이 생겼다. 소리만 듣고 다른 일정을 하려고 해도 화면에 영상이 나오니 자꾸만 시선이 뺏기게 되었다. 잠들기 전에도 티비를 켜놓았더니 오히려 불면을 유도했다. 티비는 정해진 시간에만 시청하는 것이 제일 나았다.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티비가 옵션으로 있는 집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정적을 그나마 해소해주던 요소 하나는 사라졌다.
나는 일하거나 공부할 때도 조용한 독서실, 도서관보다는 주변 음이 들리는 카페를 선호했다. 너무 조용한 곳은 오히려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산만해졌다. 본가에 살 때도 우리 집 식구 모두 티비를 좋아해서 하루의 반나절 이상은 티비가 켜져 있었다. 그 티비 소리와 가족들의 목소리에 익숙해져서인지 주변 음이 들리는 환경이 마음이 편하다.
티비가 없는 조용한 방에서 정적을 달래는 방법을 생각해봤다. 시선이 뺏기지 않고 할 일을 하면서 적당한 주변 음이 들릴 수 있는 것. 라디오와 팟캐스트가 제격이었다. 내용을 조금 놓쳐도 전혀 지장이 없고 언제든 소리에 몰입하고 빠질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몇 해 전에 생일 선물로 받았던 블루투스 스피커에는 늘 라디오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정적이 가장 힘들 때는 자기 전이었다. 불면이 잦은 탓에 잠에 쉽게 들지 못한다. 정적이 흐르는 조용한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적 속에 여러 가지 잡생각을 넣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라디오 소리가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잡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라디오 소리에만 집중하며 누워있다 보니 어느새 잠이 솔솔 왔다. 요즘은 종료 타이머를 맞춰 두고 재생시킬 수 있어 좋다. 30분으로 맞춰 두지만, 항상 10분도 채 되지 않아 잠든다.
음악을 틀어 둘 때도 있다. 하지만 음악의 분위기에 따라 집 분위기가 좌우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빠른 템포의 음악은 오히려 집중이 잘 안 됐고, 느린 템포의 음악은 뭔가 모르게 숙연해질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음악은 주로 밖에서 듣는 편이다. 물론, 기분에 따라 라디오보다 음악이 끌리는 날도 있다.
내가 듣는 라디오의 분야는 다양하다. 제일 많이 듣는 라디오를 몇 개 공유해보자면, 거의 매일 듣는 ‘푸른밤, 옥상달빛 입니다’ 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오랜 친구이자 멤버인 두 디제이의 호흡은 듣는 사람도 즐겁게 만들어준다. 고민을 들어주거나 책을 소개하는 코너도 이야기가 풍성하다. 그리고 최근에 마지막 녹음을 하게 되어 아쉬웠던 ‘이슬아의 이스라디오’ 다. 이슬아 작가가 쓴 글을 직접 낭독해주는 콘텐츠다. 이슬아 작가의 글도 아름답지만, 더 아름다운 목소리로 낭독해주니, 듣는 순간만큼은 바깥 계절에 상관없이 늘 봄으로 만들어준다. 마지막으로 구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콘텐츠인 ‘임이랑의 식물수다’. 임이랑 작가는 <아무튼, 식물>이라는 책으로 먼저 접하게 되었다. 식물을 제대로 키워본 적도, 잘 알지도 못하지만 임이랑 작가가 들려주는 식물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새로운 식물 세계로 초대받은 기분이다.
내가 듣고 싶은 소리를 마음껏 채울 수 있는 이 공간이 참 좋다. 정적이 두렵지 않게 만들어주는 수많은 목소리도 참 좋다. 이건 혼자 살 게 되니 얻은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