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 때 가장 서러운 순간을 말하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아플 때’를 꼽는다. 며칠 전, 정말 오랜만에 새벽까지 끙끙 앓았다. 갑자기 몸이 아팠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기절하듯 누웠다. 죽이라도 사 올까 했지만 나갈 힘도, 밥 먹을 힘도 없었다. 돌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서러워지고 짜증도 났다. 왜 갑자기 몸이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에 더 끙끙 앓았다. 그리고 그때 가장 후회했던 것 중 하나는 미리 약을 사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 아파서 서러움을 떨쳐내고 싶다면 가장 좋은 것은 빨리 낫는 방법뿐이다. 더 아프기 전에 약이라도 먹고 나아버리자는 심정으로 나의 서랍엔 비상약이 들어 있는 구급상자가 늘 있다. 언니가 자취방에서 쓰던 구급상자를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몇 년간 요긴하게 쓰고 있다. 하필 그날은 떨어진 비상약을 미리 사두지 않았고 설마 뭐 아프겠냐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나 자신을 야단쳤다.
구급상자에는 늘 쓰고 먹던 약들이 있었다. 혼자 살 게 되는 시간이 늘수록 나를 잘 알게 된다고, 나의 어떤 부분이 면역력이 약한지 잘 알 수 있다. 보통은 새로운 병을 자꾸 얻기보다는 아픈 곳이 또 아프고 더 아프다. 그래서 상자에는 늘 비슷한 약이 들어있다. 혼자 까불거리다 꼭 하나씩 생기는 상처에 바르는 치료 연고, 불편한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와 먹는 소화제, 감기 기운이 있으면 바로 먹어줘야 하는 종합감기약, 몸의 피로를 표출하는 구내염을 낫게 해주는 연고, 병원에 가서 눈을 째는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고 싶지 않다면 재빨리 먹어줘야 하는 다래끼약. 구급상자 옆에는 매일 먹어줘야 하지만 게으른 탓에 먹지 않고 쌓아 둔 영양제도 있다. 매일 비타민을 먹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주로 비타민C 영양제이다. 얼마 전, 생일선물로 받은 콜라겐도 냉장고 한쪽에 자리 잡았다. 이너뷰티가 중요하다더니 선물을 받고서야 하나씩 챙겨 먹어본다. 얼마 전에 요리하기 위해 매실청도 비상약 역할을 하는 중이다. 어릴 적, 배가 아프면 엄마는 따뜻한 물에 매실청을 풀어 주었다. 시큼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배를 낫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배가 아플 때 한잔 씩 먹게 되었다.
혼자 산다는 것은 내 몸을 혼자 돌보는 것과 같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보지 않으면 아픔을 감당하는 건 오롯이 다 나의 몫이다. 몽롱한 정신을 붙들고 꾸역꾸역 일상을 지내다 지쳐 쓰러져 잠들어야 하는 ‘아픈’ 하루를 떠올리면 얼마나 괴로운가. 나 또한 며칠 전 아팠던 날을 생각하면 겁이 덜컥 난다. 그러니 아프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비상약 그리고 내 몸을 건강하게 챙길 수 있는 자신만의 약을 늘 구비해 놓자. 건강이 최고야.
아, 약은 쓰레기통이 아닌 꼭 근처 약국의 폐의약품 수거함에 넣는 것도 잊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