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같은 순수함
1. 색감
색감이 이쁘다고 소문이 자자한 영화다. 소문대로 색감은 이뻤고 플로리다 모텔의 메인 컬러인 연보라는 꽤나 기억에 오래 남았다. 35mm 필름으로 촬영한 덕분인지 이 영화만의 독보적인 색감이었다.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의상 색감까지 섬세하게 신경 썼다는 게 보인다. 모든 색깔들은 조화로웠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을 더 돋보이게 해 주었다.
2. 다툼
무니의 시선엔 이웃들의 폭력, 폭언 등으로 가득하다. 핼리는 무니를 제외한 모든 이들과 싸운다. 이웃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자동차로 상대를 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사람들은 때로는 신경질적이고 또 때로는 차갑다. 이웃 간의 온정은 딱히 없다. 각자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무니의 눈동자엔 그런 모습들만 자꾸 담긴다.
나의 어린 시절,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가족들처럼 가깝게 지냈던 이웃들이 있었다 같이 축구도 보고 음식도 해 먹고 피크닉도 갔었다. 그땐 그 시간들이 일상의 한 조각이었고 당연했다. 17년이 지난 지금, 가끔씩 그 장면들이 꿈에 나온다. 1퍼센트의 욕심도 없이 서로를 챙기던 사람들이 나의 이웃이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축복이었다. 그 시절 나의 눈동자엔 당연했던 온정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지금 나의 눈동자엔 싸우는 사람들, 내가 싸워야 하는 사람들도 채워져 있다. 적잖이 괴로운 일이다.
무니의 눈동자에 그런 모습들이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많이 담아져 버린 것 같아 아프다.
3. “무지개 끝엔 황금이 있대”
무니는 젠시에게 깜짝 선물을 하는데, 그건 다름 아닌 무지개였다. 그리고 누구나 상상해봤을 무지개 끝에 대해 이야기한다. 황금이 있을 거라고. 누군가에게 무지개를 선물한다는 마음도 그 끝엔 황금이 있을 거라는 희망도 다 투명할 정도로 깨끗한 것들이었다.
무지개 끝엔 아무것도 없다. 황금을 지키는 요정도 없다. 그저 무니와 제시의 상상이다. 진짜 황금은 그들의 상상이다. 일곱 색깔 띠를 보고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펼쳐나갈 수 있는 깨끗한 상상들은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다.
4. 나무
아주 큰 나무 위에 올라타 잼 바른 식빵을 나눠먹는 젠시와 무니. 무니는 자신이 이 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를 고백한다. 그 나무는 쓰러졌지만 계속해서 자라기 때문이다.
사실 이 나무는 무니를 표현한 듯했다. 사실 무니가 처한 환경은 어린 나이에 극복하기 힘든 것들 투성이다. 앞으로 더 많이 쓰러질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 모두 알고 있다. 무니는 계속 성장한다는 것을. 나무를 닮은 무니가 이 나무의 성장을 사랑하듯, 그렇게 자신을 다독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무니는 쓰러진 날보다 성장에 더 몰입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더 이상 자라날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이 계속 자라난다. 성장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꽤나 질기고 강하다. 두 번 다시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것들도 어느새 극복해있다. 말도 행동도 할 수 없는 나무도 묵묵히 자라나는데 우리라고 못할 것도 없다. 확신에 덜 차 떨리는 목소리지만 그래도 말해야 한다. 우리 다 할 수 있어.
5. 엔딩
엄마와 헤어질 위기에 처한 무니. 영화 내내 슬픈 표정 하나 없이 천진난만하던 아이가 젠시 앞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운다. 겁이 나서 왜 다신 못 보는지 이유조차 설명하지 못한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젠시는 그런 무니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다 그녀의 손을 붙들고 디즈니랜드를 향해 달려간다. 젠시가 데려간 곳은 왜 디즈니랜드였을까.
무니가 살던 곳과 디즈니랜드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음과 동시에 아주 상반되는 환경이다. 무니가 더 이상 울지 않게 하기 위해선 디즈니랜드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젠시는 알고 있었다. 누구나 디즈니랜드를 꿈꾼다. 그곳으로 가기 위해선 얼마나 더 울어야 할까.
엔딩은 친구라는 존재가 우리에게 얼마나 특별한지 상기시켜주기도 했다. 젠시는 무니를 그곳에 아주 머물게 해 줄 순 없지만 손을 잡고 함께 달려갔다는 것만으로도 벅차도록 든든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야겠다.
6. 히든 홈리스
이 영화는 히든 홈리스들의 이야기다. 미국의 많은 저소득층 사람들이 거주할 곳이 없어 방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갈 곳 없는 이들은 주로 고시원이나 열악한 일터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영화 <소공녀>의 ‘미소‘가 생각난다. 하나둘씩 자꾸만 포기해야만 하는 현실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핼리와 꼭 닮았다.
영화에서 보이는 것보다 그들의 현실은 훨씬 열악하다.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라는 의식주는 언제부터 이렇게 지키기 어려운 요소가 되어버렸을까. 언젠가 부모님의 곁에서 독립을 하고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 내가 핼 리가 될까 봐, 내가 미소가 될까 봐 무섭다.
7. 무니와 친구처럼 지내는 핼리
세상엔 다양한 엄마의 모습이 있지만, 핼리 같은 엄마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아이의 눈높이에서 즐겁게 놀아주는 엄마가 있을까. 핼리는 무능력하고 철없는 엄마인 건 맞지만, 누구보다도 핼리를 즐겁게 해 준다. 비가 쏟아지는 날, 무니를 데리고 나가 함께 비 맞으며 뛰노는 장면을 보며 훗날 무니의 추억 속에 예쁜 기억으로 남아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친구 같은 엄마는 다른 게 아니라 이런 거구나. 아이에게 많은걸 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엄마도 좋지만, 비를 맞아도 깔깔대며 웃을 수 있는 시간 함께하는 엄마도 좋은 것 같다.
8. 바비 아저씨
바비 아저씨를 소개하자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순 없어도 묵묵히 이웃들의 곁을 지켜주는 새로운 유형의 슈퍼맨. 건물 페인트칠을 하다가도 아이들에게 낯선 이가 다가가자 페인트 통까지 떨어뜨리며 아이들을 지키러 간다. 헬리가 성매매를 하는 것을 눈치채고 외부인 출입은 본인에게 꼭 허락을 받으라는 그녀에게만 적용되는 규율까지 만들어버린다. 츤드레의 정석이다. 아버지 같기도 하다.
이 영화에 바비가 존재해서 다행이다. 바비의 시선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그냥 너무 차갑기만 했을 것이다. 나쁜 길을 가지 않게 혼을 내고, 아이들을 때로는 안쓰럽게 때로는 귀엽게 봐주는 그 시선이 있어서 영화 내내 조금은 안심했던 것 같다.
9. 무니가 핼리에게
엄마. 우리가 갈 곳 없이 방황하고 있다는 걸 알아. 내가 목욕하는 시간엔 조용히 욕조에 머물러야 하는 것도 알아. 그래도 난 즐거워. 사람들이 날 혼내러 오는 것도 무섭지 않아. 엄마가 다 쫓아내 주니까. 비가 와도 우울하지 않아. 엄마가 나랑 같이 비 맞아주잖아. 난 그렇게 엄마만 있으면 되는데 왜 우린 떨어져야 할까. 나 혼자 디즈니랜드에 가고 싶지 않아. 엄마가 나에게 디즈니랜드니까. 우릴 떨어뜨리려는 사람들로부터 아주아주 멀리 도망치자. 무지개 끝에 가면 황금이 있으니 거기로 가는 것도 좋겠어. 내가 먼저 도망칠 테니 엄마는 그 사람들한테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고 싱긋 웃어주고 와야 해. 어때?
10. 핼리가 무니에게
사랑스러운 내 딸 무니. 나보고 다들 엄마자격이 없대. 내 눈에도 네가 행복한 게 보이는데 무슨 엄마 자격이 없다는 건지. 이 나라는 우릴 도와주지도 않아. 직장을 구하래. 직장은 날 받아주지도 않아. 친구도 잃고 몸도 잃었어. 사실 너무 외롭고 힘들어. 나도 그냥 엉엉 울어버리고 싶기도 해. 난 어른스러운 행동이란 거 몰라. 그래서 나도 널 따라갈 거야. 너는 그냥 지금처럼 포크가 사탕이 되는 상상을 하며 건강히 먹고 건강히 웃어주렴. 나는 그것만 바랄 뿐이야. 이런 나도 엄마 자격 충분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