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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치 Aug 30. 2019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은 별을 보고 그동안의 상황을 판단해 보았다. 물고기는 밤새도록 길도, 방향도 바꾸지 않고 오직 한 방향으로만 달리고 있었다.”          


한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우리와 노인의 삶은 꽤나 닮아있다. 노인은 84일 동안 단 하나의 결과물 없이 바다를 향해 간다. 85일째 되는 날 비로소 그동안의 고생을 배상받듯이 자신의 배보다 큰 물고기를 잡지만, 상어 떼에게 빼앗기고 물고기는 뼈대만 남아있다. 노인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간다. 책의 내용은 이것이 전부이다. 이것이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고 말한다면 조금 서글퍼진다. 열심히 달려가며 지키려고 했지만 정작 남는 것은 없는. 목적을 이룬 기쁨은 잠시 뿐, 다시 찾아오는 시련. 하루의 끝자락에서 나는 무엇을 위해 달려왔는지, 지금까지 잘 달려왔는지에 대한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우리는 노인에게 질문하고 싶다. 다시 그 바다로 향할 건가요? 노인은 대답한다. 어젯밤 사자 꿈을 꿨단다.        

  



“노인은 자신이 혹시 이미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노인은 두 손바닥을 마주 대 보았다. 죽지 않았다. 단순히 두 손을 폈다 오므렸다만 해보아도 고통을 인식할 수 있었다.”      


노인의 고통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내 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지칠 대로 지친 노인은 자신의 생사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워한다. 오래전, 큰 어려움을 마주해 힘들어하던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육체만 살아있고 영혼은 죽어있는 기분이야. 고통이란 것은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감각도 무디게 만들어버린다.                          


“아마 나는 어부가 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몰라, 순간 노인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어부가 되려고 태어났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야. 그러니 날이 밝거든 잊지 말고 꼭 다랑어를 먹어야 해. 노인은 다시 다짐을 했다.”     


노인의 회의감은 반복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돌이키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 회의감은 사실 우리 일상에 꼭 필요하다. 그 이유는 노인의 말에 나타난다. 자신이 어부임을 자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기나긴 회의감에 사로잡혀 있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결국 내가 이 길을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된다. 소설 속 노인은 한 번의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무너지고 후회한다. 그래서 우리의 삶과 닮아있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고 불안하고 흔들린 삶. 이 책은 노인의 성공담이 아니다. 노인의 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과정 속의 고독, 흔들림. 그것을 드넓은 바닷속에 던져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혼잣말을 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소년이 배를 떠나고 나서부터인 듯했다.”

“그 아이가 있으면 정말 좋겠는데, 나를 도와주고 이 근사한 장면도 구경할 수 있을 테고 말이야.”     


노인은 소년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며 그리워한다. 힘든 일을 겪을 때도, 좋은 것을 볼 때도 소년이 생각난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는 말이 딱 맞다. 긴 사투 끝, 소년을 다시 만났을 때, 노인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생긴 것에 기뻐하며 네가 참 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동행자의 소중함을 느낀 것이다. 삶은 결코 혼자 갈 수 없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내 사람들의 손길, 응원, 존재가 없었다면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어딘가로 용기 있게 떠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돌아갈 곳이 있고 반겨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노인에게 소년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에게 내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소년은 곤하게 잠들어 있는 노인 곁으로 다가가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했다. 다음 순간 소년은 노인의 두 손을 보고 울기 시작했다. 소년은 커피를 가져와겠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길을 따라 내려가면서도 소년은 내내 엉엉 울었다.”     


노인을 기다렸던 소년은 내내 걱정했을 것이다. 돌아온 노인은 상처투성이였으니 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슬퍼하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몰래 엉엉 우는 소년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어른스러워 보였다. 소년의 모습을 닮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 몰래 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노인은 무심코 바다 저편을 바라보았다. 순간 노인은 자신이 지금 얼마나 외로운지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깊고 어두운 물속으로 프리즘 현상을 볼 수 있었고 팽팽하게 앞으로 뻗어 나간 낚싯줄과, 잔잔한 가운데서도 이상한 파동이 이는 파도의 현상을 볼 수 있었다. 무역풍 때문에 어디선지 구름이 모여들고 있었다. 앞으로 보니 한 떼의 물오리가 바로 위의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이 나타났다가 흐려지고 다시 또 뚜렷이 나타나곤 했다. 노인은 그 모습을 보며 어느 누구도 바다에서는 외롭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날이 어둡기 직전이었다, 조그만 섬처럼 큰 모자반류의 해초가 해면 가까이로 떠올라서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누런 담요 아래에서 바다가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고요한 웅장함을 드러내는 것이 멋있다. 햇빛에 반사되는 윤슬은 내 마음을 더 설레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노인이 마주한 바다를 상상했다. 노인이 이 일을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다. 그래서 저 두 대목은 꼭 기록하며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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