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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치 Jan 06. 2020

익숙하다

익숙하다

[동사]

1. 어떤 일을 여러 번 하여 서투르지 않다.

2. 어떤 것을 자주 보거나 겪어서 낯설지 않고 편하다.




대학교 1학년. 낯섦과 설렘 사이의 오묘한 기분을 누리던 어느 날,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 동아리에서 나와 같은 전공인 친구들을 만났고 4년 가까이 껌딱지처럼 붙어 다녔다. 학교 밑에서 자취를 하는 나는 빈 강의 시간이나 점심시간마다 친구들을 불러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도시락을 사와 음악을 들으며 정겨운 웃음소리를 내었다. 그 시간의 즐거움을 기록하기 위해 우리만의 SNS 계정을 만들어 영상과 사진을 올리고 우리끼리 한참 웃다가, 지인들의 반응에 또 한참을 웃었다. 그렇게 같이 수업을 듣고 같이 걸어 내려와 같이 밥을 먹고 또 같이 수업에 갔었다.

4학년 2학기. 대학생활의 마지막인 지금, 나머지 친구들은 얼마 남지 않은 온라인 강의로 학점을 채웠고 나만 일주일에 한 번만 학교에 나가게 되었다. 워낙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성향이라 큰 걱정은 없었다. 첫 오리엔테이션 수업을 마치고 혼자 강의실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늘 걷던 하굣길에는 익숙하게 들리던 친구들의 재잘거림이 없었다. 점심은 무얼 먹나 고민하다 보니 상의할 친구들이 없었다. 집에 와서 혼자 티비를 보며 밥을 먹고 혼자 커피를 마셨다. 티비 속에서는 ‘캠핑클럽’이라는 프로그램 방영 중이었다. 늘 함께 생활했던 핑클 멤버들이 오랜 시간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 캠핑을 하며 옛 추억을 떠올리는 내용이었다. 4년 가까이 당연하게 흘러갔던 일상들은 낯설지 않고 편안한 익숙함을 주었고 그 시간이 부재함으로 인해 익숙하지 않았다. 편하지 않았다.


우린 꽤 많은 것에 익숙하다. 의식하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던 그날의 점심시간에 나는 그 익숙함이 두려워졌다. 나는 얼마나 많이 무뎌져 버렸을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수없이 흘러간 시간이 내게 그토록 편안했음을 증명하는 하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설지 않은 편안함에 감사하고 더 무뎌지지 않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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