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한 성장에 대하여
1.
청량한 녹색 벼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바람소리, 기계소리만이 가득한 곳에 한 농부가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한다.
한 바퀴를 다 걷다보면 숨이 벅찰 것 같은 넓은 땅을 홀로 지켜내고 있는, 또 그 농부의 마음을 아는 듯 건강히 성장하고 있는 벼들을 담아낸 다큐멘터리이다.
2.
이 영화는 건강한 밥상이 우리 움직임의 원동력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벼의 시간, 농부의 시간을 온전히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어릴 적부터 배워왔던 농부를 향한 감사함은 가르쳐준 사람도 어느새 그것을 잊고 밥을 먹는 행위만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3.
앞서 말한 원동력을 제공하는 농민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수지타산은 늘 맞지 않다.
정부는 조작된 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리며 농민들에게 돌아갈 보상들을 철저히 무너뜨렸다.
거리에 나가 소리 지르며 시위했지만, 그들의 목소리들은 묵살되었고 한명의 생명을 떠나보냈다.
다큐멘테리에 나온 그들의 외침에 그동안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무지했고, 흘려보냈던 것 같아 마음 한켠이 서늘했다.
우린 당연한 것들을 위해 도대체 얼마나 외쳐야할지 고민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어떻게 외쳐야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하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계속 그래야할까.
4.
오정훈 감독님은 이 영화를 촬영할 때, 벼가 자라는 것을 오랫동안 기다려야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보면, 비가 오고 벼는 어느새 불쑥 성장해있었다. 그런 장면을 발견할 때마다 음악을 삽입하여 벼의 성장을 더 우아하게 보여주었다.
잔잔한 바람소리와 풀소리로만 가득했던 영상이 음악 하나로 분위기를 반전시켜주었다.
감독님의 기가 막힌음악 삽입 타이밍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5.
독립영화에 대한 아픔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8월말 쯔음이면 감독님은 이 영화에 대한 저작권을 포기할 예정이라고 하신다.
자꾸만 기회를 잃어가는 좋은 독립영화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상업영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보여줄수록 좋은 영화라는 콘텐츠가 보여주려 애써야만하는 콘텐츠가 되어가는 듯하다.
알리고 또 알리는 수 밖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