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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치 Jan 23. 2019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처음이라 서투른 존재

                                                                                                                                                                                                                                                                                                                                                                                                                                                                                                                                                                                                    

1.  

료타는 파더 콤플렉스를 앓고 있다. 자신의 아들을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으로 키우되, 자상함도 겸비해야 하는. 좋은 아버지가 돼야만 하는. 좋은 아버지, 좋은 부모란 어떤 걸까. 료타가 케이타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엄격하다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마냥 따뜻하다고 하기에도 할 수 없다. 애매하다.
료타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애를 쓴 것 같다. 그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품는 마음이니까. 나의 아이가 똑똑하고 인정받게 하기 위해 끝없이 가르쳐야 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니까.
   
그래서 정말 부모가 되는 게 두렵다. 나도 엄마가 된다면 마더 콤플렉스에 끙끙 앓고 있을 것이고, 매일매일 잉태되는 내 욕심들은 억제되지 못해 전쟁이 일어날게 뻔하다. 내 아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친구, 연인과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가 있는 것이니. 료타도, 또 다른 세상 부모들도 다 그 사랑이 처음이었을 것이니 서툴렀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다 처음이었으니까.
   
   
2.
   
료타네와 유다이네는 극과 극이다. 감독이 상반되는 가정을 설정한 것에 대해 하루 종일 박수를 보내도 부족하다. 두 부모가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부터 다르다. 벌거벗은 개구쟁이의 류세이와 깔끔한 정장 차림의 케이타. 류세이가 료타의 곁으로 온 첫날, 료타는 젓가락질하는 법을 알려준다.
케이타가 유다이 곁으로 온 첫날, 다수의 틈에서 음식을 빨리 먹어야 한다고 알려준다. 두 가족이 계곡에서 사진 찍던 날 료타네의 큰 DSLR 옆엔 유다이의 작은 디지털카메라가 있다. 이렇게 상반되는 모습을 더 찾고 분석하고 싶을 정도로 감독의 연출에 빠져들었다.
   
   
3.
   
케이타가 유다이네에서 하룻밤 자고 돌아온 날, 미도리가 케이타에게 묻는다.
“ 우리 둘이 어딘가로 갈까? ”
“ 아빠는? ”
“ 아빠는 일이 있으니까. ”
  
미도리의 대사가 끝나자마자 기차 안은 어두워진다. 어두운 기차는 미도리의 심정을 대변한다.
미도리는 외로움으로 가득한 사람이다. 남편의 바쁜 생활에 늘 익숙해져야 하고 매번 괜찮다고 해야 한다. 정말 괜찮지 않았으면서. 누군가가 나에게 소홀해지는 것에 아파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그 소홀함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 사람이 나에게 몰입하게 원하는 욕구를 포기해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존심을 내리는 것도, 비참해지는 것도 다 익숙해지는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료타는 케이타 몫지 않게 미도리에 대한 소중함도 반드시 깨달았으면 했다.
   
   
   
4.
내가 부모가 된다면 두 아빠 중 어떤 모습일까?
겉은 유다이, 속은 료타일 것 같다. 화목하고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며 즐거운 분위기를 형성하지만 마음 한 구석엔 료타처럼 내 아이가 똑똑해지길 간절히 바라고, 또 엄격해져야 한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것이다. 두 가정 모두 정답이 아니지만, 류세이가 가정으로부터 받은 싱글벙글한 미소는 어딜 가나 사랑받을 거라는 생각에 내 속도 유다이가 되려고 늘 노력하지 않을까.
   
   
   
5.
   
나라면 케이타와 류세이를 교환할까. 아직 내가 결혼도 양육도 안 하고 있는 상태여서 어린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교환할 수 없다. 케이타와의 마지막 식사 장면은 두 눈을 질끈 감게 할 정도로 마음이 미어졌다. 케이타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밥.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면 부탁하겠다는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교육. 케이타의 사진과 손길로 가득했던 방은 하나하나 비어가질 때, 난 당장이라도 전화해서 교환을 취소하겠다고 떼썼을지도 모르겠다.
23살의 나는 낳은 정보다는 기른 정인가보다.
   
   
   
6.
   
   
케이타가 떠난 뒤, 료타는 카메라 속 사진들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케이타는 몰래몰래 부모님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기록해두었다. 사진만 봐도 애정이 느껴졌다. 그래서 케이타는 카메라를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고, 료타는 끝내 몰랐었다. 떠나고 나서야, 마냥 순종적인 꼬마 아이에게도 부모를 향한 애정이 있었고, 피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연결돼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도 케이타와 같은 고통을 겪었는데 아빠가 되고 나니 똑같은 고통을 주고 있었다. 그걸 깨닫고 나서야 케이타의 마음을 공감했다. 항상 이렇다. 무너지고 나야 고개를 들게 된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한다고, 그 말이 정말 맞다. 부재에 아파하고 후회하지 않게 현재 존재하는 것들을 사랑하고 감사해야 한다. 당연해져서는 안 된다.
   
   
   
7.
   
류세이와 가까워지기 위해 캠핑장비들을 설치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총싸움에도 적극적이다.
하루 종일 웃고 떠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류세이는 소원을 빈다. 어떤 소원을 빌었냐고 묻자, 엄마 아빠에게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그리고 세어 나오는 눈물을 두 손으로 막으며 미안하다고 한다. 케이타를 그리워하고 미안해하고 있던 엄마도 눈물을 흘린다.
   
노력만으로도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한 가족이 되기 위해 애를 쓰고 마음을 나눴지만 정말 딱 거기까지였다. 그 마음에 아직 사랑했던 부모와 아이가 살고 있어서 그 자리를 도저히 채울 수가 없는 것이다. 아프지만 그 자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기에 더 아팠다.
   
   
   
   
8.
   
영화를 두 번 보았다. 두 번째는 엔딩크레딧까지 보았다. 몰랐었다. 마지막에 아이들과 가족들이 밝게 웃는 사운드가 담겼다는 것을.
   
갈수록 느낀다. 우린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웃는 평범함이 어렵다는 것을. 이해가지 않는 것들 속에서 그럼에도 나의 가족이기에 사랑해야 함에 머리가 지끈 아파 올 때가 있다. 그래서 그 웃음소리들이 더 소중하게 들렸다. 마음 편하게 하하호호 다 같이 웃은 적이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가족이라는 것은, 피로 연결되어있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연결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자꾸 뭔지 몰라 답답하다. 이 공동체에 안정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재빠르게 뒤쫓아오는 불안정이 날 힘들게 하는 시기이다. 지나고 나면 별일 아니겠지만, 지금 당장 한편이 아려 오는 건 어쩔 수없다. 가족은 도대체 무엇으로 연결되어야 평범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의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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