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1.
스즈메의 그림일기 속에는 평범함이 한가득이다. 청소하고 빨래하고 자전거를 타고 등등. 누구나 다 할 수 있고 별로 어렵지 않은 일들.
스즈메는 남편이 유일하게 챙기는 거북이를 던져버리는 상상을 종종 한다. 하지만 마음속의 낙하산이 상상을 현실로 데려오곤 한다.
내가 펼쳤던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해외토픽 뉴스에 이미 여러 번 나왔을 것이다.
카리스마 있게 진두지휘 하는 나, 복수하고 싶은 사람의 머리에 커피를 쏟아버리는 나, 팔방미인으로 소문나 인터뷰 요청이 끊이지 않는 나.
실행하지 못해 늘 상상만 하다 낙하산은 내 머리를 치며 정신 차리라고 한다.
어쩌면 스즈메와 내 일상이 평범한 이유는 실행 없는 상상으로 가득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2.
스즈메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 존재인지 의심한다. 아무렇지 않게 새치기를 하며 밀치고 가는 할머니. 기다림을 야속하게 만들며 쌩 가버리는 버스.
도대체 이 사람들한테 난 뭘까. 내가 보이긴 할까.
종종 그렇게 생각하곤 할 때가 있다. 옥상달빛의 <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를 몇 번이고 들었을 때가 있다.
내가 사라지고 나면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기억에 남을까 하고 나의 존재를 곱씹었다. 언제쯤 내 존재는 명확해질까.
나의 결론은 애쓰지 말자 였다.
진짜 내 존재를 알아주는 사람은 뒤돌아 도망가도 알아준다. 소리 지르고 악을 쓰고 애써도 외면하는 사람은 끝까지 외면한다.
그러니까 애쓰지 말자.
3.
쿠자쿠와 스즈메는 같은 날 탄생하여 정반대의 삶을 살아간다. 쿠자쿠는 공작, 스즈메는 참새라는 뜻이다. 공작답게 화려하고 참새답게 소소하다. 화려한 일상의 쿠자쿠 옆의 스즈메는 늘 작아진다.
비교대상이 늘 내 옆에 있는 건 곤혹스럽다. 자꾸만 나를 잃어가고 옆 사람의 기준에 맞추게 된다. 겨우겨우 상대방을 이겨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이미 저 멀리 위에 솟아나 있다. 거기서 오는 박탈감과 회의감은, 싫다 그냥.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눈을 감아버리고 만다. 사실 정말 비교해야 할 대상은 ‘어제의 나’라는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어제보다 오늘 나는 더 잘해왔는지, 시선을 나에게 두어야 하는데. 자꾸만 옆을 보게 된다.
영화의 끝 무렵, 쿠자쿠는 엉뚱한 소릴 한다. 애매함을 유지하는 스즈메가 늘 부러웠다고. 스즈메는 그런 쿠자쿠에게 넌 이것저것 많이 하면서 왜 날 부러워하냐고 한다. “이것저것 많이 하면 말이야, 살아가는데 의미를 알 수 없게 돼버려.”
쿠자쿠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부러워했던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하기도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결국 상대방의 기준에 맞추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고, 그 기준이 정답도 아니었고, 상대방이 나보다 더 위에 솟아있었던 것도 나의 착각이었다. 의미 없는 일에 우린 계속 에너지를 쏟을 것인가, 현재의 나에게 에너지를 쏟을 것인가.
고민하면서도 옆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니 시간이 꽤나 걸릴 것 같다.
4.
스즈메가 가장 좋아하는 라멘집은 맛이 어중간하다. 맛있는 것도 아닌, 맛없는 것도 아닌. 그래서 사람이 많이 오지도 적게 오지도 않는다. 스즈메는 그런 어중간한 라멘을 가장 좋아한다. 어중간한 맛인 이유는 사장님도 스파이여서이다.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는 가게에 손님들은 적당히 와야 했고 입소문도 적당히 나야 했다. 영화의 끝 무렵, 본부로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고, 마지막 라멘을 만든다 그 라멘은 아주 맛있었다. 스파이 동료가 이렇게 맛있게 만들 줄 알면서 왜 늘 어중간하게 만들었냐고 그에게 묻자,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라며 눈물을 뚝뚝 흘린다.
누구나 최상을 꿈꾼다. 사장님도 그랬을 것이다. 꿈을 절제하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기까지 고독한 사투가 있었을 거고 처음으로 털어놓은 진심에 눈물이 났을 것이다. 무엇이든지 이유 없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대충 어중간한 라멘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기 위해 어중간함을 유지했던 사장님처럼. 사소한 것도 이유가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이 사소하고 평범해 보여도 결국 다 이유 있는 순간들이니 하찮게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5.
에츠코는 스즈메에게 혹시 모르니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인사를 하고 오라고 한다. 스즈메는 거북이만 챙기던 남편은 마지막 인사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말한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이별은 대단한 게 아니라 한쪽이 죽고 난 뒤 처음으로 ‘그때 그게 마지막이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이별도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이별은 상대방의 마음으로부터 내가 떠나기 시작한 이별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몸은 상대방 옆에 있을지라도 이미 마음이 떠났을 때도 있고, 상대방의 마음에 상관없이 난 이미 내 사람이라고 취급하지 않을 때도 있고.
끊어진 연들을 다시금 떠올려보면, 굳이 우리의 관계는 여기까지야 라고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멀어지면서 끊어지기도 했고 불편했던 대화들이 마지막일 때도 있었다. 그런 순간들이 앞서 말한 이별에 해당될 것이다. 스즈메의 말이 공감이 갔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깨닫게 되고, 후회를 제외한 어두운 감정들이 나를 지배한다. 근데 왜 꼭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지 그건 진짜 모르겠다. 왜 당시에는 생각이 안 나는지. 그럼 이 찌꺼기들 하나 없이 조금이라도 깨끗했을까.
6.
스즈메는 아빠를 보러 간다. 아빠는 스즈메에게 오랜만에 스모 한판 할까? 하며 익숙하다는 듯 경기를 펼친다. 그리고 따뜻한 물을 주며 싱글벙글 웃어주신다.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부터 아빠는 바빴고, 어른이 되어가다 보니 나도 바쁘기 시작했다. 그런 생활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원망하지 않는다. 아쉬운 건 아빠와 나만의 추억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이라도 만들면 되지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아직 용기가 나질 않는다.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려고 용기조차 내고 있지 않을까.
7.
일본 영화 특유의 통통 튀는 매력들을 느낄만한 영화였다. 스즈메의 훼훼훼훼 웃음소리는 너무 사랑스러워 절로 미소 짓게 만들었고, 선배와의 어색한 대화 속 책상이 점점 길어지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하아아아이...” 라고 대답하는 것 또한 이색적인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버스러운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였다.
예전엔 이런 유치하고 통통 튀는 일본 영화를 싫어했는데 이젠 그 매력에 빠져버렸다. 영화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아 좋다.
8.
뭐든 마음먹기 달렸다 라는 말, 내가 입이 닳도록 하는 소리다. 스즈메의 스파이 임무는 최대한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내는 것이다. 평소처럼 장을 보고 빨래를 너는 거지만 어쩐지 스파이 임무라고 하니 더 특별해지고 신중해졌다.
우리 일상은 계속 이렇게 평범할 것이다. 그럼에도 특별해지길 원하는 우리는 어떤 마음을 품고 일상을 보낼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한다. 그냥 흘려보낼 것인지. 아님 또 다른 시선으로 일상을 볼 것인지. 스스로에게 특별함을 준다면, 거북이 같던 우리도 의외로 빨리 헤엄치고 있지 않을까. 알고 보면 이미 빨리 헤엄치고 있는 중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