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을 들을 수 없는 안부
1.
이츠키는 답장이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죽은 애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죽음이라는 것은, 정말 애를 쓰고 노력해도 두 번 다시 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얼마나 간절했을까. 그렇게라도 안부를 묻고 싶었던 이츠키의 간절함이 느껴져 그 편지는 마냥 아프기만 했다. 우린 가끔 마주할 수 없는 사람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그냥 잘 지내왔는지, 난 어떻게 지내왔는지의 대화 정도. 끊어진 연에 더 이상의 후회도 미련도 없지만 그때의 기억이 문득 튀어나올 때면 속으로 물어보곤 한다. 잘 지내냐고. 김동률의 ‘답장’이라는 곡을 듣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답장이 없는 것도 답장이다.” 나의 물음에 기나긴 침묵만이 존재하지만, 이츠키가 원했던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담담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2.
왜 하필 안부였을까. 만약 내가 이츠키였다면 참 많이 보고 싶다며 내 마음을 다 쏟아버렸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런 이츠키의 마음을 자신보다는 상대를 위했던 마음이라 말한다. 그저 안부 정도만이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으니. 이츠키는 그러기까지 글자 하나하나에 얼마나 자신의 감정을 절제했을까. 사실, 감정에 솔직해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라, 이츠키의 마음이 100퍼센트 이해 가진 않지만 이츠키의 상황에 놓인다면 가끔은 절제된 감정을 전달하는 게 건강할 때도 있겠구나 싶다. 뭐든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지니까.
3.
후지이 이츠키라는 동명이인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 집이 허물어졌다면, 또 그전에 이사를 가버렸다면 이 영화는 전개될 수 없다.
모든 것이 타이밍이다.
4.
동명이인의 이츠키를 찾게 해 준 숨은 조력자는 바로 이츠기의 현 남자 친구 아키바이다. 죽은 전 애인을 그리워하는 여자 친구를 위해 편지의 주인을 찾아주고 전 애인이 조난당한 산 건너편으로 데려가 욕이라도 실컷 하라며 마음을 뻥 뚫리게 해 준다. <길에서 만나다 2>라는 책에 보면 ‘그녀를 좋아하는 나는 그를 좋아하는 그녀의 마음까지 좋아하지 않으면 곤란하다.’라는 대목이 있다. 그건 비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니 아키바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싶었고 하나도 비참해 보이지 않았다. 아름다웠다. 아키바에게도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전 애인에 대한 마음을 차근차근 정리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을 누가 쉬운 일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난 이 영화의 캐릭터들 중 가장 칭찬하고 싶은 사람이 아키바다.
5.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매개체는 ‘편지’이다. 편지에는 ‘기다림’ 이란 게 존재한다. 영화에서 그 기다림이 크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두 여자는 소년 이츠키에 대한 추억에 대한 물음과 대답들을 꽤나 기다렸을 것이다. 편지는 어느새 소년 이츠키에 대한 추억들로 가득하고 뒤늦게나마 그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편지는 지난 시간을 걸어보게 하는 마법이 있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잠시나마 그 시간에 잠겨 음미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편지가 참 매력적이었단 걸 잠시 잊었다. 마지막으로 편지를 쓴 게 언제일까. 기억하고 싶은 시간을 걸으며 내 마음을 구구절절 전달하고 싶다.
6.
어느 겨울,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고 대답 없는 안부를 물었다.
생각지 못한 대답이 들려왔고 그 대답을 찾아 눈을 밟고 또 밟았다. 넌 이 차가운 눈 속에서 얼마나 추웠을까.
대답을 찾다 보니 내가 알지 못했던 너의 모습을 보았다. 너의 시선엔 나와 꼭 닮은 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참 아팠지만, 네가 미처 전하지 못한 이 온기를 그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녀가 써 내려간, 그 사람으로 가득한 그 편지들은 내 것이 아니라 그녀의 것이었다.
보고 싶다고 외쳐보고 싶지만 너의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지길 원하니 난 그냥 잘 지내냐고 외쳤다.
그리고 나도 잘 지낸다고 했다. 잘 지낸다는 이 말이 이젠 거짓말이 아니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