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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실루엣 Aug 11. 2020

귀를 기울이면

중학교 3학년 시즈쿠. 아빠에게 도시락을 전해주러 가던 길, 심상치 않아 보이는 고양이를 따라간다. 그곳에서 신비한 잡화점을 발견하고,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데 그 사람은 바로 세이지. 시즈쿠가 궁금해했던 도서카드에 적힌 이름의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꿈을 공유하고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그 꿈을 향해 달려간다.






모든 순간이 처음인 너에게

모든 순간이 시즈쿠에게 처음이었다. 현실을 마주하는 것, 진로를 정하는 것, 사랑에 빠지는 것, 사랑을 거절하는 것, 꿈에 도전하는 것. 모든 것이 엉성했고 낯설게 느껴졌지만, 처음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사랑스럽고 빛이 났다.

시즈쿠가 겪은 혼란스러움과 참지 못한 눈물 또한 나도 똑같이 경험한 일이기에 힘껏 안아주고 싶었다. 10대의 나를 떠올리면 시즈쿠와 닮아있다. 시작을 겁먹었고, 사랑에 쉽게 마음이 요동쳤다.

하지만 그 시작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아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시작하지 않았다면, 성장도 완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시절, 내가 꼭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고 싶다. 시작이 엉성한 것은 당연한 일이니, 마음이 가는 대로 도전하라고. 겁먹지 말고 걸어보라고. 시즈쿠의 성장이 기대되고 자꾸 보고 싶다.




찰나의 순간

시즈쿠는 세이지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자꾸만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아 화만 내지만, 그들이 서로에게 빠지고 있다는 것은 둘 빼고 다 아는 사실. 하지만 그 끌림을 인정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조잘대며 이야기하는 시즈쿠에게 귀여움을 느낀 세이지는 “넌 귀엽지 않은 고양이와는 달라”라고 말하고,

바이올린을 능숙하게 연주하는 세이즈를 바라보는 시즈쿠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맑다.

사랑에 빠진 순간을 떠올려보자. 사소하고 찰나이다.

바닷물이 햇볕에 반짝이는 순간처럼 찰나이기에 사랑이 더 아름다운 게 아닐까.




사랑: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것

스키무라는 유코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 스키무라에게 시즈쿠는 둔하다며 나무랐지만, 사실 스키무라는 시즈쿠를 좋아하고 있었다.

시즈쿠는 그의 사랑을 거절한 뒤, 이마를 두 손목에 떨구며 말한다.

“정작 둔한 것은 나였어.”


사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적절한 대응이 없듯이, 사랑 또한 그렇다. 살면서 수없이 거절하고 또 거절당해야 하는 우리는 이런 과정에 익숙해지길 원하지만, 아픈 상처만 박힐 뿐 여전히 적절한 대응은 없다. 일기예보처럼 미리 알려준다면 조금은 달라질까.




사랑: 진짜 나를 마주하는 것 그리고 더 나은 내가 되는 것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세이지와 시즈쿠.

진작 응원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세이지에게 시즈쿠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있어서 열심히 한 거야. 나를 더 잘 알게 됐어.”


사랑은 진짜 나를 마주하는 것 그리고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다.

꿈이 있는 세이지를 보며 시즈쿠는 부러워하다가도 그에게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밤낮으로 글에 몰두하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깨닫는 시간까지 올 수 있었던 계기는 세이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 난 얼마나 변화했을까. 분명한 것은, 혼자 걸어갈 때보다 훨씬 용기 있는 발걸음이 되었다. 어디서든 내 손을 잡아주며 믿어주는 사랑 덕분에 두려움을 덜 수 있었다.

내 사람과 함께라면 어떤 비난도 금방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이든 도전하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용기를 주는 것이 내 사람의 힘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네가 믿는 대로 살아 보렴. 하지만 남달리 사는 건 쉽지 않을 거야. 누구 탓도 할 수 없거든.” 방황하는 시즈쿠에게 아빠는 말했다.

우리가 선택한 삶은 책임감도 함께 가져가야 한다. 상황을 바로잡는 것도, 돌이켜보는 것도 모두 나의 몫이다. 꽤 무거운 과정이지만 그럼에도 시즈쿠는 자신의 선택을 믿기로 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실패했다면, 또 다른 나의 길을 선택할 수 있지만, 누군가의 선택을 따라가고 실패했다면 또다시 타인의 기준에 쫓아가야 하는 것이다. 누구의 기준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까.


자신의 선택을 믿는 또 하나의 이유는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이 글 쓰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연습과 노력 외에)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이 단지 구직을 넘어 삶의 자리를 되찾아 주는 일임을 나는 선배와의 인연에서 실감했다. 나는 누구에게 황금 같은 말을 건네주는 ‘처음’이자 글 쓰는 삶을 찬미하는 증인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은유 <쓰기의말들>


돌 틈 사이 빛나는 원석을 보여준 할아버지, 시즈쿠의 믿음을 존중해주는 아빠, 시즈쿠의 글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 시즈쿠에겐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스스로 걸어갈 수 있지만, 시작의 선에서 함께 해주는 것은 결국 나를 응원해주던 사람들이다.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욕은 그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 많은 사람이 떠오른다.




현실과 낭만 사이

“왜 변하는 걸까? 머릿속에 누가 자꾸 현실은 다르다고 말해”

낭만과 현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며 살아갈까.

변화 속에서 낭만과 현실과의 균형을 찾아 나갈 수 있을까.





고양이

이번 영화의 최다 출연 조연 배우는 고양이. 시즈쿠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고양이가 가는 길을 쫓아간다. 그곳에서 미처 몰랐던 나의 원석과 그 원석을 발견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려 걸어가고 있다면 멈추지 말고 계속 가야겠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기대하며 또 상상해보며 나의 고양이를 따라가야지.




8~90년도 일본 특유의 애니메이션 색채

최근, 시티팝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시티팝은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일본에서 유행한 음악이다. 시티팝을 들으며 영화의 장면들을 천천히 감상하며, 통통 튀는 색감과 매력적인 그림체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운드

매미 소리, 영화 사운드 트랙은 ‘여름’을 표현해주었다.

어느 여름날의 이야기다. 뜨거운 태양 아래의 매미 소리, 여름날의 싱그러움을 담은 사운드트랙. 영화 속 어느 여름날을 함께 보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해준다.




도서카드

영화 <러브레터>에도 나온 도서카드. 90년도까지 사용되었던 도서 대출용 카드이다. 책을 빌린 사람과 날짜를 적어야만 대출이 가능했다.

가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어떤 사람들이 나와 같은 책을 골랐을지 문득 궁금했다. 이 책을 읽고 나와 같은 생각에 잠겼을지, 어떤 계기가 되었을지 등등. 지금 도서카드가 존재했다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유대감을 느꼈을까.




스키무라가 시즈쿠에게

시즈쿠. 그늘진 나무 아래에서 누군가 나를 좋아하고, 나는 너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던 그 시간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어. 우리, 슬픈 표정을 하고 헤어진 뒤에 세이지가 너를 찾아왔고 반 아이들은 놀려댔지. 널 많이 좋아했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은 좀 어려웠어. 네가 나에게 미안해하던 거 알아. 그래도 미웠고 나 자신도 미웠어. 그리고 유코가 얼마나 속상했는지도 알겠더라. 직접 겪어보니 비로소 알게 되었어. 그래서 일부러 네가 보는 앞에서 유코에게 사과했어. 유코의 마음을 이해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네가 조금이라도 질투를 느끼길 바랐던 것 같아.

시간이 꽤 지난 지금, 내가 너를 왜 좋아했을까 라는 생각을 우연으로 추억에 흠뻑 빠졌었어. 시즈쿠. 타인이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살아가기는 쉽지 않아. 흔들리지만 그 속에서 너를 잃지 않고 걸어가는 것. 작은 배움에도 큰 성장을 하는 것. 솔직한 것. 그 모든 것이 너를 좋아한 이유인 것 같아. 그리고 그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응원하고 싶었어.

우리 언젠가 그늘진 나무 아래에서 다시 만나자. 그땐 지난날을 웃으며 이야기하고, 서로 응원해주자. 그곳에서 널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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