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일치네요. / 필연 아닐까요?
같은 수원 출신이란 게 신기하다며 우연이라고 하는 주희에게 준하는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른다며 수줍게 웃는다. 준하는 주희를 바라보며 같은 배를 타고 간 순간 확신했다. 우린 우연 아닌 필연이라고.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마음이기에 확신할 수 있었고 마음껏 사랑했다. 흰 도화지에 새빨간 물감 하나가 떨어졌을 뿐인데 도화지는 ‘난 사실 꼭 빨강이 되어야만 했어.’ 하며 빠른 속도로 물든다. 아무런 색깔 없었기에 그러니까 첫사랑이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저 대사는 영화 전체 스토리를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다. 필연, 틀림없이 꼭 만나는 것.
주희와 준하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그들의 자녀들을 통해 흘러들어와 이루어진다. 영화는 둘의 사랑이 어떻게든 만나 이루어지게 됨을 둘의 첫 만남을 통해 예고했다.
편지가 주는 힘
주희와 준하가 사랑하던 1970년대는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연락 수단은 전혀 없었다. 유일하게 주고받을 수 있었던 건 편지였는데, 이 편지가 어쩌면 그 시대에만 가질 수 있는 애틋함을 만들어줬는지 모르겠다. 지금 내 앞에 휴대폰도, 노트북도 아무것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담긴 타자를 치고 지우는 행위보다 더 애절해진다. 내 마음을 전할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펜을 꽉 쥔 손으로 꾹꾹 눌러 적으며, 그 사람을 오래 생각하며, 여러 감정을 쏟아내는 그 시작부터 보내는 그 순간까지 이 편지가 그에게 잘 갔는지, 읽었는지, 도중에 잃어버린 건 아닌지 별별 생각을 한다. 그렇게 그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찬 하루를 보낼 것이다.
준하와 주희가 주고받던 편지 속에서 그 힘이 느껴져 더 마음이 아려온다.
우리 둘만 아는 눈빛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태수를 따라 포크댄스를 배우러 갔던 준하는 주희를 재회하게 되었다. 둘은 서로 좋아하고 있음을 숨긴 채 수업에 들어가는데, 서로를 향한 눈빛을 놓치지 않는다.
주희와 준하가 보고 싶었다며 입 모양 속삭임을 주고받을 때의 눈빛은 내 마음 또한 간지럽혔다.
우리 둘만 아는 눈빛, 사랑하는 사람들끼리의 특권 아닐까.
소나기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나는 장면이다. 오두막에서 비를 맞으며 소녀가 춥지 않게 애쓰는 소년의 모습. 두 주인공이 다시 재회하여 영화 <클래식>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것만 같았다.
또한 영화에서는 소나기가 자주 내리곤 하는데, 감독은 비가 주인공의 절절한 감정을 대비한다고 말했다.
태수의 역할
태수는 어땠을까. 주희와 준하의 사랑에 가려졌지만, 사실 제일 짠한 인물이다.
주희를 사랑하고. 준하를 아끼고. 주희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준하는 주희와 사랑하는 사이라고 말하고. 아버지는 정략결혼을 어겼다며 자신을 때리고. 그리워하던 주희는 준하를 그리워하고. 준하가 있는 곳에 함께 가고. 이 모든 것이 태수가 감당해야 할 상황이었다.
태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꾸만 픽 쓰러져버리는 자신의 몸처럼 모든 상황이 쓰러져가고 있음에 지쳤던 게 아닐까.
영화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태수의 깊은 마음이 궁금하다.
이 영화를 가을에 보게 되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