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꽃 뵈르블랑 소스
작년 겨울부터 마음속에 품어온 꽃이 있다. 크고 우아한 백목련. 산골의 산수유가 만개하고 매화가 고개를 내밀 때쯤, 나는 그 흰 꽃의 설레는 순례를 준비했다. 산골에서 목련이 피는 한 자리를 알고 있었다. 겨울 우연히 산중턱에서 주워 본 목련의 털껍질 안에는 하얀 휴지처럼 말린 꽃잎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 단단한 신비를 만나기 위해 돌아올 봄을 기약하며 나무를 올려다 보았다. 필시 아름다운 목련일것이라고 상상하며.
시내에 벚꽃 축제가 한창일 때, 나의 온실에서는 월동추가 꽃대를 올렸다. 비가 내리고 해가 나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졌다. 벚꽃이 흐드러지면 꼭 비가 내려 꽃의 고개를 떨구는 것은 산의 법도였다. '꽃이 피면 곧 비가 온다'는 것은 산골의 봄을 지켜보며 터득한 질서였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특히 봄 초입의 꽃에게는 허락된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반짝 해가 난 일요일, 강아지 겨울이와 함께 목련나무를 향해 길을 나섰다. 가파른 내리막을 지나 송악정 오두막과 돌 거북이 입에서 나오는 약수로 목을 축였다. 저 멀리 산불보호 초소에서 우리를 먼저 반기는 이는 아버지가 '조카며느리'라 부르는 마을 할머니셨다. 겨울이를 보며 환하게 마중을 나오신 할머니의 얼굴에 이내 수심이 드리웠다.
“우리 집 강아지를 내가 보냈잖아….”
할머니는 세달 전 겨울, 유일하게 아끼던 푸들을 안락사시키셨다. 남편과 일찍이 사별하고 가족이 되어준 강아지다. 이웃집이 참새를 잡으려 놓아둔 제초제 섞인 음식 쓰레기의 냄새를 맡은 탓이었다. 안락사 비용 20만 원과 시청에 뗄 서류들을 정신없이 혼자 치루셨다고 했다. 그때의 충격으로 생긴 대상포진 자국이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다고 이마를 짚어보이셨다. 할머니의 슬픔은 작년 어느 날 우리 집 앞에 놓인 까만 봉지 안의 뜯지 않은 사료와 배변 패드로 먼저 도착했었다. 당신의 강아지는 떠났지만, 우리 집의 새 식구 겨울이를 위해 두고 가신 그 마음은 지독히도 시린 검은 비보였다. 등돌려 우신 눈물을 알기에 한동안 겨울이를 그곳까지 산책 시키지 않았었다. 할머니의 등뒤로는 앵두나무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곧 지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시간이 꽤 흘렀음을 알 수 있었다.
할머니를 뒤로하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 우리 조상님의 묘가 있는 양지바른 곳에 닿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때, 솜사탕처럼 매달린 하얀 목련을 마주했다. 그러나 한발 늦었다. 비를 맞은 목련은 이미 활짝 피어 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므린 봉오리를 따고 싶었으나 꽃잎은 이미 너그러이 벌어져, 손을 댈 때마다 고인 빗물이 차갑게 손등에 떨어졌다. 내 발밑을 지키는 겨울이도 그 목련을 닮았다. 녀석의 발바닥은 말랑하고, 하얀 몸통은 한없이 보드랍다. 내가 없으면 밥 한 그릇 제대로 비우지 못하는 이 가냘픈 생명은 나의 온 존재를 필요로 한다. 목련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이는 것처럼, 녀석의 아주 작은 발소리에도 나는 온 감각이 솟았다 내려앉는다. 연약한 것을 곁에 둔다는 것은, 그만큼 나의 일상이 그들의 안녕에 깊게 저당 잡힌다는 뜻일까 마음을 졸이며 목련에게 닿은 발걸음을 떠올렸다.
나무 아래로 툭, 떨어진 목련 꽃잎을 본다. 겨울이는 제 몸 비슷한 색깔의 떨어진 그 하얀 잎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한바구니 그 순백들을 담고, 가장 하얗고 예쁜 목련을 초소를 지키던 할머니께 놓아드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또 다른 연약한 소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강하던 막내 외삼촌의 몸에 갑작스런 이상이 생겼다는 연락이었다. 엄마의 입에서는 잿빛 한숨이 뿜어져 나왔다. “살이 계속 빠지고 있다”는 삼촌의 목소리가 너머로 들렸다. 막연히 산골에 오면 평안할 줄 알았다. 단단하고 조용한 일상이 이 봄을 따사롭게 만들 줄 알았다. 하지만 종종 평화는 꽃잎보다도 가볍게 흩어졌다. 엄마는 삼촌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예감한듯 했다. 비에 젖은 후 위태로이 겨우 매달린 목련처럼 삼촌의 봄이 어딘가에 걸려있었다.
누군가의 삶이 마침표를 찍었다는 소식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위태로운 균형 위에 서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강아지의 털 속에 얼굴을 묻고 온기를 확인하며 생각했다. 살아있다는 것은 결국은 격렬하게 피어내고 스러지는 목련의 생애와 다르지 않음을. 나의 풍성해진 바구니는 마치 꽃이 진 뒤의 빈 가지처럼 쓸쓸하게 다가왔다. 목련을 물에 헹구니 금방 갈색으로 변해갔다. 그 우아하던 자태는 온데간데없고, 상처 입은 흔적들만 남았다. 나는 꽃잎이 바래져도 괜찮은 소스를 만들었다. 잘 구워낸 열기 위에 갈색으로 변한 목련 꽃과 밑동을 장식으로 올렸다. 입안에 넣은 생목련의 맛은 씁쓸하다. 마치 할머니의 대상포진 자국처럼, 혹은 삼촌의 마른 목소리처럼. 그 쌉쌀한 맛은 무엇인가 시들어가는 맛 비슷했다. 때로 우리는 아름다운 꽃이 저무는 그 이면의 씁쓸함은 외면하고 싶어한다. 은근히 퍼지는 알싸한 목련의 맛을 삼키며 내일의 연약한 것들이 안녕하길 바래본다.
[재료] :
목련 뵈르블랑 : 목련 4개의 잎, 생크림50ml, 버터 60g, 화이트식초50ml, 화이트와인과 개복숭아주 혼합하여 200ml, 달래뿌리 한줌, 소금 1g
부재료 : 열기, 달래 오일, 봄까치 나물의 어린순, 냉이꽃
1. 목련은 빠르게 이물질만 헹군다.
2. 술과 식초, 다진 달래의 뿌리를 넣어 팔팔 끓여가며 졸인다.
3. 볼에 2와 목련을 넣어 랩을 잘 씌우고 냉장고에 하룻밤 재운다.
4. 3을 체에 거르고, 200ml에 생크림, 버터, 식초, 소금을 넣고 거품기로 잘 저어준다.
5. 미리 올리브유에 마리네이드하여 수비드한 열기를 토치로 껍질을 태워 목련처럼 오므려준다.
6. 완성된 뵈르블랑에 달래 줄기로 낸 오일을 혼합하고 마무리한다.
목련의 수술은 장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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