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깨꿀떡
산골로 가는 길이 아스팔트로 바뀐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좁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아빠의 트럭이 뒤로 한 번 '끼익' 덜컹거리고 나면 두 눈은 저절로 질끈 감겼다. 오른편은 핸들을 조금만 잘못 비틀어도 금세 떨어질 것 같은 절벽이었고, 트럭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폭이 비좁았다. 언젠가 이 절벽 아래로 차와 함께 굴러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고사리손에 땀을 쥐게 했다. 캄캄한 밤이 내려앉으면 종교도 없던 어린 내가 두 손을 모으고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게 만드는, 그런 아찔한 길이었다.
그 길목에는 어렴풋이 진분홍빛 진달래꽃이 보이곤 했다. 어쩌면 기억의 왜곡일지도 모른다. 서른 무렵 산골에 방문한 어느 5월, 그 길에는 진달래 대신 아카시아 나무가 무성했다. 기억 속의 진달래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다. 그렇게 잊힌 진달래는 지난해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이곳에서는 더 이상 진달래가 자라지 않는다고 멋대로 결론지었을 뿐이다. 참 희한한 일이다. 한국에서 가장 흔한 꽃이 아니던가. 분명 기억 한편에 남아 있던 그 진달래 한 그루가 언제 솟아난 기억인지 알아낼 방법은 없었다. 사실 다시 찾는다 해도 그리 감격스러운 상봉은 아닐 터였다. 진한 분홍빛은 그저 고무장갑 같은 촌스러운 색깔일 뿐, 한 번도 특별한 존재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당의 매화꽃이 하나둘 만개하던 아침, 이따금 오르던 집 앞 숲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사슴을 기르는 곳이라 발길 닿는 대로 들르곤 하는 장소다. 겨우내 붙어 있던 잎사귀들을 다 털어낸 낙엽들은 어느새 땅의 양분이 되어 삭아 있었다. 그 틈에서 초록빛 아기 새싹들과 나뭇가지 끝에 고개를 내미는 작은 잎들이 저마다 겨울이란 고비를 잘 넘겨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익숙한 냄새가 났다. 폐부 깊숙이 냄새를 끌어 모아 들이켰다. 비 오기 전 도시의 아스팔트가 젖은 냄새가 아니라, 울창한 숲이 머금은 습한 흙과 나무껍질의 냄새였다. 그 진한 향기를 따라 겨울의 색이 채 가시지 않은 길을 밟았다. 그 순간, 눈앞에 분홍빛 별들이 떠올랐다. 진달래 군락이었다. 이제 막 개화를 시작했는지 오므린 꽃봉오리들이 가득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살금살금 진달래에게 다가갔다. 나무들은 158cm의 키와 엇비슷하게 자라 있었다. 나란히 서서 살포시 꽃등을 들어 올려 보았다. 수술까지 진한 핑크빛인 꽃은 청초한 여인의 긴 속눈썹처럼 허공을 응시했다. 그 눈맞춤에 숨이 멎을 듯했다. 마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세상에 없던 존재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진달래는 사라진 게 아니었다. 키로 짐작하건대 그것은 분명 오랜 세월 자라온 나무였다. 가느다란 가지들이 여러 갈래로 뻗어 사방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그동안 도시에 살며 자주 공원을 찾았고, 계절이 오는 냄새를 맡으며 날씨를 곧잘 맞춘다 자부해 왔다. 늘 시장 근처에 살며 제철 식재료에도 밝다고 믿었다. 그런 예민한 감각이 몸에 새겨진 본성이라 여겼다. 하지만 사실 계절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매화가 필 때쯤 진달래도 피어난다는 것, 씨앗은 멀리 날아가지 않고 제 주변을 맴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촉촉한 산비탈에서 훨씬 잘 자란다는 것. 야생의 군락을 이제야 발견한 이유는 여전히 내가 이곳을 잘 모르는 이방인임을 확인시켰다.
진달래 꽃잎은 얇아 찢어지기 쉽다. 조심히 꽃의 밑동을 뜯어내야 한다. 그렇게 딴 꽃은 금세 시들기에 오래 방치하는 것은 금물이다.
진달래 하면 '화전'이라는 공식이 떠오른다. 누가 알려주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다만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손길을 거쳐 나왔던 것 같은 희미한 잔상만 남아 있을 뿐이다. 할머니와의 추억은 짧게 필름처럼 남았고, 4년 전 봄을 만나지 못한 채 겨울 끝자락에 산골의 산등성이에 잠드셨다.
아무도 진달래로 화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일러주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떡을 잘 만드셨다는 기억만큼은 선명하다. 명절이면 직접 반죽을 치대어 삶은 콩과 설탕, 꿀, 밤을 듬뿍 넣고 주먹 송편을 빚어 주시던 모습. 입안 가득 퍼지던 뽀얀 멥쌀의 맛은 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투박한 사랑이었다. 언제든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여겼기에, 떡을 빚는 행위에 담긴 고단함을 헤아리지 못했다. 한입 두입 베어물고 내려놓았던 떡의 심심한 모양을 떠올린다. 마침 지난해 거둬 갓 볶아둔 들깨가 병에 가득이다. 주방에 서서 멀끄러미 숨은 진달래가 있는 산을 바라보며 반죽을 시작했다.
꽃을 따다 음식을 만드는 일은, 산을 오르는 수고부터 정성스러운 손질까지 온통 사랑하는 이를 향한 헌신이다. 진달래를 보며 미처 다 받아보지 못한 사랑의 색깔들을 읽는다. 촌스럽다 밀쳐두었으나 늘 곁에 있을 줄만 알았던, 그러나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 마음들을 떡 속에 꾹꾹 눌러 담아 봄을 현상한다.
[재료 : 멥쌀가루, 비정제설탕, 볶은 들깨, 천일염, 자작나무 수액, 아카시아청, 수술을 제거한 야생 진달래꽃,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1. 자작나무 수액은 집에서 얻은 것을 뜨겁게 끓여 준비했다.
2. 체를 친 멥쌀가루 150그람에 천일염 1 티스푼과 백설탕으로 가볍게 간을 하여 버무린다.
3. 뜨거운 자작나무 수액을 가루에 넣어가며 한 덩이가 될 때까지 뭉치고, 여러 차례 치대어 준다.
4. 20g씩 분할하여 넓게 펼치고 비정제설탕과 들깨를 혼합한 내용물을 한 스푼 넣어 꼼꼼히 봉한다.
5. 찜기에 넣어 15분간 쪄준다.
6. 올리브유(혹은 일반 요리유)를 떡에 고루 바른 뒤, 작년에 만든 아카시아청을 조금 뿌린다.
7. 가볍게 헹궈 물기를 제거한 진달래 꽃을 얹어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