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환대
작년 4월 2일, 고향으로 돌아와 어느덧 1년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사라진 자리에서 돌아왔을 때 공항에는 외숙모의 손에서 귀국을 환영한다는 휴대폰 어플로 만든 전광판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환대의 기쁨과 감동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공항 밖으로 나서서 만난 한국의 하늘은 뿌옇고 공기는 텁텁했다. 강원도로 향하는 뒷좌석에서 나는 내내 너무 섣부른 결정을 한 것은 아닐까 잿빛 건물들을 마주치며 생각했다. 내 기억 속의 도리내의 모습도 어딘가 퇴색되어 있었다. 청보리밭이 아름답던 곳에는 은퇴를 맞은 주민이 사과밭을 새로 일구면서 흉물스럽고 기다란 파이프들이 집 앞의 풍경을 가로막고 있었다. 하얀색 울타리가 예쁘던 우리의 집도 시멘트벽으로 잔뜩 메워져 있었다. 스페인으로 가기 전 담보처럼 심어두었던 아스파라거스는 몇몇 돋아나는 잎사귀로 흔적만이 남아있었고, 마늘잎이 풍성하게 자라던 비닐하우스는 철골만 남은 채 모두 폐허처럼 뜯겨 있었다. 아무것도 내게 아름답다 생각이 드는 기억 속 정경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생애 처음으로 농한기를 보내고 맞이한 3월은 내 기억 속의 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3월이라 하면 따스한 기운과 초록의 빛깔이 돋아나는 계절이라 생각했건만, 산골은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를 제외하면 밭도 산도 여전히 황량한 흙빛이었다. 그저 겨우내 월동하며 새순을 내미는 낮은 키의 방풍나물과, 땅속 깊이 뿌리박고 있던 보랏빛 냉이가 서서히 초록 옷을 갈아입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은 난데없이 눈이 내리다가도 이튿날엔 거센 비가 쏟아지는,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날씨가 이어졌다.
“여긴 다른 곳 하고 다르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을 도리내에서 보내고 계신 아버지는, 3월에도 여전히 눈소식이 남아있다며 넌지시 말하셨다. 수많은 세월만큼이나 달라진 공기의 결만으로도 날씨를 가늠할 정도로 산골의 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는 분이었다. 나는 3월에 눈이 온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으나, 변덕스러운 날씨가 휘몰아치고 지독한 몸살을 앓고 나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돌이켜보면 3월은 늘 애매한 달이었다. 새 학기의 정신없음 속에 꽃샘추위가 한차례 몰아치는, 겨울의 끄트머리에 아슬하게 걸쳐진 달. 나는 그간 3월의 진면목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뜸하던 참새들의 방문이 한층 요란해지며 자연의 볼륨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고랑과 이랑 사이로 이슬이 맺혀, 마치 유리 조각 같은 살얼음으로 얼어붙었다. 그 위로 발을 내디디면 땅이 딱딱하게 굳어 있어 어색한 발걸음은 삐그덕 대곤 했다. 그러다 오전 10시가 지나면 땅은 다시 말캉하게 녹아내렸다. 대도시 마트에서 '제철'이라며 사 먹던 재료들이 사실은 대부분 하우스 재배였다는 것을, 나는 이 황량한 밭 한가운데 서서 깨달았다. 옛날 같으면 이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해 굶어 죽기 십상이었겠다는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알던 계절의 정의들도 새로이 내려앉고 있었다.
마을 어귀, 아스팔트 길 가드레일에 기댄 커다란 산수유나무 한 그루가 있다. 산책할 때마다 꽃봉오리가 언제쯤 맺히고 피어날지 지켜보며, 나는 혼자만의 약속을 정했다. 저 노란 꽃이 팡하고 폭죽처럼 터지는 날을 나의 봄이라 부르기로. 춘분이 지나자 서서히 벌어지던 꽃망울이 마침내 예쁜 꽃을 피워냈다. 그 힘껏 터뜨린 봄을 축복하며 정성스레 거두어 앞치마에 넣어두었다. 도리내에서 처음으로 만난 봄은 산수유로 명명되었다. 저마다 느끼는 봄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누군가는 한 주 전 산수유가 핀 풍경을 보았겠지만, 나에게는 오늘에서야 산수유가 피었다. 사계절은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흐르는 것이 아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래가 있는 밭으로 향했다. 산수유가 봄의 알람을 울렸다면 달래 또한 제철의 시간을 맞이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히 있던 달래가 온데간데없었다. 아버지가 밭의 로터리 작업을 하며 달래와 시금치를 모두 밀어버리신 것이다. 잔디처럼 남은 짧은 줄기만이 이곳이 달래의 터였음을 짐작게 할 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미로 땅을 들춰보니, 줄기와 뿌리가 두 동강 난 달래들이 흙 속에 파묻혀 있었다.
‘내가 기다린 봄이 사라졌어..’
나는 하루아침에 시체밭이 된 달래들을 분주히 파내기 시작했다. 달래는 줄기가 가늘고 연약해 땅속 깊이 박힌 뿌리를 들어 올리려 하면 뚝 끊어지기 일쑤였다. 손에 힘을 너무 주어도 끊어지고, 호미질 한 번 잘못해도 쉽게 올라오지 않았다. 이 가녀린 뿌리가 가진 버티는 힘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애써 수습한 달래들을 담아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달래 밭 언덕배기에는 10년 가까이 키운 아로니아 나무들이 있다. 휑해진 풍경이 어색해 다가가 보니 그마저도 모두 베어져 있었다. 유행이 지나 사람들이 더는 찾지 않는 아로니아를 정리하기로 아버지가 나도 모르게 결정하신 것이다. 끊어진 달래와 10년의 세월이 도륙된 아로니아를 애도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내게는 아우성치며 자라나는 새로운 새싹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3월 초입부터 올 한 해의 먹거리를 직접 기르기 위해 육묘를 시작했다. 3주가 지나자 하나둘 새싹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새싹은 생육 적정 온도가 되지 않으면 좀처럼 발아하지 않는다. 낮과 밤의 기온이 한층 따스해지면서 생명들이 껍질을 깨고 태어나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건강한 새싹만 남기고 솎아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정식했을 때 서로 양분을 빼앗아 좋은 결실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겨울 내내 기다리던 딸기의 꽃도 아쉽지만 도려내야 한다. 첫 꽃을 그대로 두면 다음의 열매를 얻을 힘이 소진된다. 카모마일, 브로콜리, 케일, 쌈 채소, 적양배추의 새순들을 과감히 골라낸 뒤 주방에 섰다. 내겐 상실의 아쉬움과 봄을 맞은 기쁨이 교차하고 있었다. 달래를 수차례 씻어 손질하고, 새싹에 엉겨 붙은 흙을 말끔히 털어내며 지금을 살고 있고, 한때 살아 있던 것들을 보듬었다.
< 봄을 맞는 웰컴 스낵>
1. 아버지의 앉은뱅이밀로는 반죽을 빚어 크래커를 만든다. 이 밀은 통밀이라 구우면 흙빛이 된다.
2.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와 물, 소금, 그리고 잘게 썬 달래 줄기와 갓 볶은 참깨를 넣어 한데 뭉친다.
3. 얇게 밀어 재단하여 포크로 구멍을 내고 전기구이기에 15분간 굽는다.
4. 달래 뿌리는 센 불에 달군 팬에 투명할 때까지 빠르게 볶아 소금과 후추를 뿌려 익힌 뒤 식혀둔다.
5. 사워크림 대신 아랫목에서 발효시킨 요거트에 마요네즈를 섞고, 작년에 건조해 갈아둔 아로니아 파우더로 고운 색을 입힌다.
6. 크래커 위에 보랏빛 요거트 소스를 올리고, 구운 달래를 군데군데 얹는다. 그 위에 솎아낸 새싹들과 산수유꽃, 첫 딸기꽃, 후추를 뿌려 마무리한다.
떠나간 작물들을 배웅하고, 새로운 봄을 한자리에 맞이하는 '웰컴 스낵'이다. 그리고 나의 돌아올 산골의 봄을 환영하며, 한입 가득 베어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