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좋은 이유
"여름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입니다."
-라고 말하면 주위 사람들은 놀라곤 합니다. 덥고 습하지 않아? 벌레 싫어하지 않아? 네. 저는 더운 것도, 벌레도 싫어합니다.
아, 그럼 여름의 감성만 좋아하는구나? 확실히 여름 감성은 인기가 많습니다. 어찌됐든 배경이 여름이면 아련하다는 '여름이었다'라는 말이 유행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관념적 여름'만 좋아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실제로 겪는 여름은 싫지만, 여름이 주는 이미지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글쎄요, 하지만 저는 여름 자체가 좋은 것 같습니다.
왜 여름이 좋은가 하고 생각해보니, 여름이 '생생한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빛에 땀을 흘리다가 시원한 스타벅스에 들어갔을 때,'하!'
타들어가는 목을 얼음을 가득 올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꿀떡꿀떡 마실 때, '하!'
마치 고난을 이겨 낸 주인공이 주는 카타르시스처럼, 여름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더 강렬하고 진하게 느껴집니다.
또,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파랗고, 나무와 풀은 어느 때보다 진한 초록색으로 빛납니다. '와!'
하루의 마지막에는 핑크색, 보라색으로 물든 진한 솜사탕 노을을 볼 수 있습니다. '와!'
여름만의 진한 자연의 색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요즘 느끼는 것은, 누군가나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단순히 그의 모든 성질을 좋아한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모든 부분을 좋아할 수 있을까요?
‘A라는 부분은 싫지만, 그럼에도 B라는 부분이 너무나 좋아서 A를 참을 수 있을 정도의 마음’. 그게 제게 여름인 것 같습니다.
정말 싫어하는 장마와 여름 벌레를 거쳐야 한다 하더라도, 이 선명한 감각의 계절은 그것들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행복합니다.
몇 년 전 초여름에 쓴 글을 덧붙입니다.
여름이 좋다. 봄은 일 년이 바뀌는 데서 오는 왠지 모를 불안감과 낯섦에, 가을은 또 왠지 모를 쓸쓸함에, 겨울은 한없이 움츠러들게 하는 추위 때문에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들은 좋지만. 창 밖으로 초록빛 나뭇잎들이 보이는 카페에서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잘 꾸미지 않는 나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여름 블라우스와 원피스. 작렬하는 태양이 보여 주는 그 어느 계절보다 푸른 하늘의 색. 더위와 벌레를 끔찍이 싫어하면서도, 여름이 주는 인상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매년 여름을 기다리게 한다. 200602
아직 에어컨을 틀지 않는 동네 작은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