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럭무럭 자라나다오
올해 봄부터 우리 가족이 새롭게 시작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가족 텃밭입니다.
시에서 주최한 마을 공동 텃밭 분양에 당첨되어, 넓은 마을 텃밭 중 작은 베란다 사이즈의 땅에서 여러 채소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집에서 텃밭까지는 걸어서 약 15분, 마침 운동하기에도 딱 좋은 거리입니다.
베란다 가드닝을 즐기던 엄마의 지휘 하에 우리 집은 상추, 토마토, 오이 등을 심었습니다. 저의 주된 업무는 잡초 뽑기입니다. 엄청난 운동 부족이 쭈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고 있자면 정말이지 허리가 쑤시고, 더워지는 요즘에는 어지러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텃밭에 가는 것은 정말 즐겁습니다. 다른 집은 무얼 심었나 구경하는 것도 좋고, 며칠 새 쑥쑥 자란 우리 텃밭 아이들을 보면 참 대견하고 기뻐집니다. 뭐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하루 종일 노트북과 휴대폰을 보면서 무뎌진 감각이, 텃밭에서는 다시금 살아납니다. 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열매가 잔뜩 열린 나무, 흐드러지게 핀 장미들이 집에 올 때는 눈에 들어옵니다.
살아 있는 것은 존재만으로 위로가 된다, 는 말을 몸소 느끼는 중입니다.
텃밭 하면 역시 수확의 기쁨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늦봄에서 초여름은 잎채소 수확의 계절입니다. 잎채소는 한 번 수확의 시기를 맞으면, 한창 동안 계속 무럭무럭 자랍니다. 특히 상추는 효심이 대단합니다. 분명 전부 따왔는데도 다음 날이 되면 또 초록색 잎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놀랍습니다.
요즘 우리 집 식탁에는 항상 초록색이 빠지는 날이 없습니다. 상추와 겨자를 잔뜩 넣은 비빔밥, 청경채 볶음, 루꼴라 파스타와 샌드위치.. 막 따 온 신선한 잎채소들로 만든 요리는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맛입니다. 그냥 채소만 먹어도 맛있지만, 다른 재료의 맛이 풍부해지는 느낌입니다.
아낌없이 주니, 자연스레 아낌없이 나누게 됩니다. 마치 소매 넣기의 현장입니다. 거의 매일 텃밭에 갔다 오는 엄마의 손에는 항상 비닐봉지가 있습니다. 텃밭에서 마주친 근처 주인장(?)들이 나눠 주는 모양입니다.
"비트 안 심었죠? 좀 가져가요."
오늘은 옆 텃밭에서 엄마가 비트 잎들을 잔뜩 받아왔습니다.
저녁에 집에 가면, 비트 쌈을 먹어볼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