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행복을 오래 오래
벚꽃과 아인슈페너의 공통점을 아시나요?
유독 많은 눈이 내렸던 겨울이 지나 봄이 찾아왔습니다. 개나리가 먼저 활짝 핀 후 매화가 하나 둘 꽃을 피우고, 마침내 벚꽃이 한아름 피어난 완연한 봄입니다. 저는 이 즈음이 되면 자꾸만 생각나는 음료가 있습니다. 커피 위에 부드러운 크림이 가득 올라간 아인슈페너입니다.
카페에 가면 아이스 초코만을 주문하던 제가 메뉴판에 아인슈페너가 있는지부터 확인하게 된 지는 이제 삼 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처음 아인슈페너를 마신 것은 송리단길에 있는 <코히루>라는 카페에 친구와 갔을 때입니다. 친한 언니의 강력한 추천으로 아인슈페너에 큰 로망을 갖고 있던 저는 처음으로 직접 아인슈페너를 주문해봤습니다.
투명한 커피잔에 넘칠 듯 말 듯 크림이 가득 올라가 있는 아인슈페너는 비주얼적으로도 취향이었지만, 맛은 더 좋았습니다. 먼저 처음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크림이 가득 들어옵니다. 그리고 '조금 단가?' 싶어질 때에 약간 쓰면서도 고소한 에스프레소가 들어와 완벽한 조화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단쓴단쓴'의 매력에 푹 빠져, 요즘도 디저트를 먹지 않을 때에는 꼭 아인슈페너를 시키곤 합니다.
그런데 주문한 아인슈페너를 받을 때 몇몇 카페 사장님들이 꼭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빨리 드시는 게 좋아요."
커피 위에 올린 크림이 녹으면 금방 커피와 섞여버려, 전체적으로 맛이 텁텁해지기 때문입니다.
벚꽃이 필 때가 되면 아인슈페너가 생각나는 이유, 그것은 둘 다 '찰나의 즐거움'을 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실 벚꽃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론 만개한 벚꽃길을 걷는 것은 정말 행복합니다. 특히 바람이 살짝씩 불면서 꽃잎이 떨어지는 걸 보고 있자면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어요. 어쩌면 일 년 중 가장 황홀한 날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황홀한 날이 보통 일 년에 하루밖에 안 된다는 것을, 가장 아름다운 순간 이후 바로 져버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슬퍼집니다. 마치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누군가를 잃는 것처럼요. 그래서 벚꽃이 흩날리는 풍경을 볼 때면 마음 속으로 감격과 슬픔이 동시에 느껴지는 건지도 모릅니다. 언젠가는 일기에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지는 순간이 가장 아름답다니 이상한 꽃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벚꽃이 싫다기보다는, 이런 벚꽃을 보며 조급해지는 저의 마음이 싫었습니다. 내년이 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절정의 시기를 놓칠까봐 노심초사했습니다. 나의 일정들을 조정하며 어떻게든 그 순간을 남기려 했습니다. 찰나에 집착하는 저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스스로에게 딱히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감정을 줄줄이 털어놓는 대신 '벚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닌 것입니다.
무엇이든 가장 아름답고, 맛있고, 향기로운, 절정의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런 때에만 사물이 가치를 얻게 되는 건 아닙니다.
카페 사장님들의 조언을 들으면서도 저는 한 번도 아인슈페너를 빠르게 홀짝 마신 적이 없습니다.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커피의 맛이 텁텁해지기는 하다만, 그 맛이 제가 좋아하는 아인슈페너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크림은 여전히 달고, 커피는 여전히 고소합니다.
일전에는 벚꽃 시즌에 맞춰 일본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연분홍빛 벚꽃으로 가득 물들어 있어야 할 공원에는 추적추적 비가 오고 있었고, 계속 추웠던 날씨 탓에 벚꽃은 아주 조금씩 피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여전히 제가 좋아하는 벚꽃이었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진 않았지만 이 벚나무들이 앞으로 꽃을 피워 공원을 가득 메운다고 생각하니, 그것만으로 풍경이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결코 변하지 않는 본질도 있기 마련입니다.
싹이 트고, 꽃이 피는 봄날이 오면, 저는 여전히 벚꽃이 가득 피기를 기다립니다.
올해는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아인슈페너를 먹는 시간처럼, 덜 달콤한 것마저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