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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Apr 21. 2018

마주침

#.3 남아공

남아공 땅을 밟다.

케이프타운(Cape town) 땅을 밟았다. 6월의 케이프타운은 겨울과 동시에 우기였고 홍콩에서 느꼈던 무더위와는 다르게 쌀쌀한 늦가을 날씨였다. 무엇보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이번 여행의 무사한 마무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작이 중요했다. 한국에서 미리 도움을 받고자 케이프타운 한인회 회장님께 연락을 해두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더반빌(Durbanville)에 위치한 회장님 댁에서 여행의 시작을 준비하게 되었다. 더반빌(Durbanville)은 케이프타운(Cape town)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깨끗한 도로와 유럽 같은 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Cape town)은 아프리카라고 말하기 무언가 어색할 정도로 유럽과 닮았고 추운 날씨였다. 유럽과 닮았음은 역사적 사실을 들여다봤을 때 그도 그럴만하다고 생각 들지만 쌀쌀한 날씨는 머릿속 아프리카 대륙의 이미지와 너무 달라 색다르게 느껴졌다. 언제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구름 낀 날씨에 앞으로의 자전거 여행이 심히 걱정되기도 했다.

케이프타운 나미비아 영사관

케이프타운에 위치한 나미비아 영사관에 들러 비자를 신청한다. 남아공은 무비자 입국이 가능 하지만 나미비아의 경우 비자가 필요함은 물론이고 국경에서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기 때문에 남아공에서 미리 비자를 발급받고 입국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래도 다른 나라에 비해 대부분의 나라에서 반겨주는 대한민국 여권 파워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 정도 복잡스러움에 감사할 수 있게 된다.

자전거 조립

본격적인 자전거 여행에 앞서, 자전거를 조립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전혀 예상치 못 한 브레이크 와이어가 조립 중에 절단됐다. 설마설마하니 와이어에 문제가 생기랴... 무엇 하나 빠짐없이 준비하기 위해 공들였던 출발 전 모습이 불현듯 스쳐 지나간다. 역시 인생은 예측불가.

자이언트 매장

다행이었다. 숙소 근처 더반빌(Durbanville)에 대형 자전거 샵이 있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오히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물품과 전문가로부터 재차 자전거 정비를 받을 수 있어 큰 도움이 됐다. 웬만한 물건은 케이프타운에서 모두 구할 수 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이곳이다.

자이언트 매장 직원들과

자전거 정비를 모두 마치고 본격적인 출발에 앞서 자전거와 함께 카메라 첫 셔터를 터트렸다. 이 와중에 자이언트 자전거를 앞으로 두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사명감 투철한 직원들 덕에 웃음이 난다. 이제 본격적으로 두근거리는 심장 부여잡고 미지의 세계로 두 다리를 굴린다.

R302 도로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 첫날. 바람이 매우 차갑긴 했지만 뒤에서 불어주는 바람이 좋았다. 그리고 오르막길 또한 많지 않아 어렵지 않은 첫 여행길이었다. 정신없이 다리를 굴리다 보니 첫 번째 목적지에 단숨에 도착했다. 짐을 싣고 약 45km를 이동하면서 2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스스로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매일이 이렇다면 순탄하게 자전거 여행이 마무리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자전거 초심자의 큰 오산이었다.

여행 채비를 위한 분주한 아침 (Malmesbury)

이튿날. 겨우 어제 하루 자전거를 타고 으쓱거리던 내게 경고라도 하듯 몸에 문제가 생겼다.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아파본 적이 없어 지금의 몸상태가 어떤지 스스로 판단이 서질 않았다. 괜찮아 질지 어떨지 예상을 할 수가 없으니 더욱 두려웠다. 사경을 헤맨다는 게 이런 것일까?? “나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어” 내 옆을 지키던 정대원에게 겨우 내뱉은 한마디가 고작 이런 나약한 소리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제발 포기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겨우 잠을 청했다.

넓고 쾌적한 도로

다음날 비교적 숨 쉴 수 있을 정도의 컨디션으로 눈을 떴다. 기도가 이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었던가? 신기하고 너무 감사했다. 무엇보다 묵묵히 간호해준 정대원에게 고마웠고 나로 인해 팀 호보그레이트져니가 멈추지 않게 됨에 안도했다. 하루 자전거를 타고 이 난리를 부렸으니...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자만하지 말자. 찬바람을 막아줄 버프, 고글, 헬멧, 장갑 등등 당장 필요성을 못 느끼던 장비의 착용을 반드시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기본을 지켜야 오래 달릴 수 있음을 호되게나마 배워 다행이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 불사르지 말자. 적당한 휴식이 있어야 길게 오래갈 수 있다.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자. 어차피 목적지는 내가 멈추지 않은 한 도착하게 된다. 하루에 10시간 이상 자전거 페달을 굴리며 나에게 맞는 인생 살기를 정립해 나갔다.

N7도로를 타고 북상

남아공 N7도로는 나미비아 B1도로와 만난다. B1도로로 향하는 길은 고도 1000m까지 올라가는 산악지역이다. 정말 멋진 풍경과 깨끗하게 놓여있는 도로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역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계속해서 마주치는 업힐(Up hill)로 인한 고통은 눈과 귀를 멀게 한다. 주변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그저 헬스장에서 하루 종일 페달을 굴리는 고통으로만 느껴진다. 막 퇴사한 서른 살 김대원과 정대원은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술에 쩌들어 살던 안일했던 삶을 반성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남아공에서의 바이킹(biking)은 기초체력 증진을 위해 매우 훌륭한 훈련장소였다.

컨테이너 실은 대형 화물차가 많다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많은 운전자들 중 수차례 경적을 울리며 힘을 불어넣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덤프트럭의 경적 소리에 머리가 울려 눈살 찌푸리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스쳐 지나가는 경적소리에 큰 힘을 얻었다. “경적소리에 힘을 얻다니...” 하루 종일 경적이 울리는 인도(India)의 도로 위에서 울상이었던 모습이 떠올라 그만 피식 웃게 된다. “그렇다더니 정말 생각하기 나름이구나”

전날 내리던 비에 젖은 운동화 건조 중

첫날의 순풍 이후 여행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역풍은 계속됐다. 내리막 조차 페달질 없이 내려가지 않을 정도의 바람이었다. 케이프타운에서 나미비아로 향하는 길 서너 차례 내리는 비에 추위에 떨었던 날들도 있었다. 남아공에서는 비교적 비 맞은 날이 많았지만 전체 여행 기간을 놓고 봤을 때 그 정도 비 맞았음에 감지덕지였다.

드넓은 하늘 아래 쉬어가기

"네 친구는 한참 뒤에 있던데?" 잠시 앉아 쉬고 있는 우리에게 한 운전자가 멈춰 말을 걸어온다. "응?" 정대원은 분명 손 닿을 거리에 있었기에 그의 말이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후 종종 마주치는 사람들로부터 의문의 동양인 자전거 여행자가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알게 됐다.  친구가 한참 뒤에 있다는 퀴즈 같은 말의 실마리도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연스럽게 풀렸다.

나미비아에서 온 데런과 Nuwerus에서 로지(lodge)를 운영하는 코버스

“아마 내일쯤이면 그가 이곳에 도착할 거야” 코버스(캠핑사이트 주인장)가 말했다. 코버스는 차를 타고 우리를 지나치던 운전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누워러스(Nuwerus)에서 로지(Lodge)를 운영하는 사장님이었고 누그 지역을  지나던 우리는 그를 다시 만나게 됐다. 코버스도 우리를 만나기 전 역시나 의문의 동양인 자전거 여행자를 마주친 모양이었다. “정대원 우리 이곳에서 하루 더 쉬어가자” 남아공에서 그것도 같은 자전거 여행자라니. 어디 보통 인연이겠는가?

책은 꿈을 꾸게 한다_꿀잠

하루를 더 로지(Lodge)에서 캠핑하며 체력 보충과 비에 젖은 옷 등을 빨래하며 재정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문의 자전거 여행자를 손꼽아 기다렸다. 자전거 여행자... 그리고 동양인.

"일본? 중국?"

“에이 설마 한국인이겠어?”

그러나 사건은 언제나 설마에서 시작되는 법. 우리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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