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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May 07. 2018

이곳 사람들

#4. 남아공



Hardeveld Lodge 캠핑사이트

케이프타운(Cape town)에서 약 360km 떨어진 Nuwerus에 도착한 우리는 풍문의 동양인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기 위해 하루 더 쉬어가기로 했다. Nuwerus는 자전거로 나미비아를 향해 북상하는 동안 경유하기 좋은 곳에 위치해 있기에 그가 이곳을 지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인연이 닿다.

이튿날. 그의 실체가 드러났다. 어느 나라 말로 인사를 건네야 할지 망설여지던 찰나 눈에 들어오는 그의 헬멧. 태극기가 박혀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국인이십니까?" 빨간색 미니벨로를 이제 막 벽에 기대고 숨 고르던 그에게 인사말을 건넸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도 한국어로 응답했다. 혼자 미니벨로 자전거를 끌고 아프리카로 자전거 여행을 왔단다. 아프리카에서 그것도 자전거 여행자로서 게다가 한국인이라니. 쉬이 의지하는 친구가 되기에 충분한 기이한 만남이었다.

혼자 그리고 둘이 와서 셋이 된 팀 호보그레이트져니

혼자 하는 자전거 여행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면 일정 구간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는 별다른 고민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렇게 우리는 둘에서 셋이 됐다. 이 만남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평생 기억될 추억을 함께 공유할 친구가 늘었다는 것에 기뻤다. 그리고 그에게 감사했다.

마을을 이동하는 중간중간 쉼터가 있다.

Nuwerus에서 Garies까지 약 80km를 이동하는데 쉴 새 없이 역풍이 몰아쳤다. 내리막길 조차 페달을 굴리지 않으면 앞으로 나갈 수 없을 만큼의 역풍이 몰아치니 여행이 아닌 전지훈련과 같은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정말 눕고 싶은 심정

춥고, 배고프고, 가도 가도 쉽게 바뀌지 않는 지루한 풍경은 육체적 고통을 넘어 정신적 고난까지 불러일으킨다. 아프리카가 왜 이리 추운 거지?... 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거지?... 가도 가도 같은 풍경이니... 제자리인 것만 같아!!! 지옥이 있다면 꼭 이런 느낌일 것만 같다.

목적지에 도착 = 천국에 도착

그래도 별수 없다. 부지런히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두 다리 굴리는 수밖에. 마침내 저 멀리 마을이 눈에 들어오면 없던 힘도 생겨난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코펠에 지어진 설익은 밥을 먹고 그저 텐트에 누워 오늘 하루를 돌아보는 잠자리는 그야말로 천국이다. 천국?? 이동하는 동안 불평불만하며 지옥을 논하던 낮의 내 모습이 떠올라 헛웃음이 난다. 어쩌면 힘들었던 순간 역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요소인지 모르겠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내일을 위해 일찍 잠을 청한다. 사실 마땅히 시간 보낼 것이 없어 일찍 잠들었다고 해야 맞을지 모르겠지만 내 삶에서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자는 것에 집중해 본 적이 있었던지. 어쩐지 행복다.

리어 림 크랙...

이제 겨우 하루 자전거를 함께 탔는데 그의 자전거에 문제가 생겼다. Garies로 이동하는 동안 자전거 리어 바퀴림(rim)에 크랙이 갔다. 케이프타운에서 Garies까지 이동하는 동안 바퀴 림(rim)이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크랙이 간 것이다."저쯤 가보면 중국인이 하는 고물상이 있을 거요" 역시 그랬다. 케이프타운을 벗어나 N7도로를 타고 북상하는 동안 자전거 가게가 있을 만큼의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마을은 없다. 케이프타운 혹은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쿠로 버스를 타고 이동해  알맞은 바퀴를 찾아보는 것 이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빨간색 미니벨로가 말썽이다.

이렇게 의문의 자전거 여행자를 만난 지 만 하루 만에 이별 아닌 이별을 하게 됐다. 그는 미니벨로에 맞는 휠을 찾기 위해 나미비아 빈트후크로 이동하기로 했고 나와 정대원만이 자전거를 타고 국경을 향해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그가 바퀴를 구하기 전까지 나와 정대원이 빈트후크에 도착한다면 다시 재회하는 것으로 약속했다. 그리고 그러길 바랐다.

친절하고 유쾌한 남아공 사람들

아프리카에서 한국인 자전거를 만난 게 된 일. 그 기이한 만남 이외에도 남아공에서 많은 이들과 마주치며 이야기할 시간이 꽤나 많았다. 남아공을 떠올릴 때면 무지막지한 치안상태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좋지 않은 치안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우리와 마주친 남아공 사람들과 인상 찌푸리며 대화한 기억은 없다. 그들은 작은 두 명의 동양인에게 인색하지 않았으며 웃음으로 다가서는 우리를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었다. 적어도 내가 만난 그들은 그랬다.

남아공에서 받았던 따듯한 도움

식량이 없는 우리에게 선뜻 자신의 음식을 내어주고 위로의 말까지 잊지 않았다. 자전거 여행자인 우리에게 큰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자전거로 남아공을 여행하는 동안 마주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따듯한 친절을 배웠다.  

재미났던 대화

"머리까진 스님을 조심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우리를 향해 누군가가 소리친다. 무슨 말인가 싶어 가던 길 멈춰 이야기를 나눴다. 알고 보니 자신이 중국 영화를 보았는데 무지막지하게 폭력을 휘두르는 스님이 있더라는 것이었다. 황비홍을 경계하라는 그들의 시각이 참 재미있었다. 선의든 악의든 폭력은 좋지 않은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그들의 배웅과 함께 국경으로 향했다.

열심히 달려가자!

아침이 오면 부지런히 자전거를 타고 저녁이 오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휴식을 취하고 그저 하루하루 정해놓은 거리만큼의 길을 여행하고 내일을 위해 일찍 잠들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이 생활도 제법 익숙해져 갔다. 고도 1000m를 향해 달려가면 Springbok이라는 제법 규모가 있는 국경 마지막 도시에 다다른다. 우리는 이렇게 조금씩 첫 번째 국경에 단 하나만의 도시를 남겨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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