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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옷 May 28. 2019

가성비가 너무 떨어지잖아요

여행의 장점이 '새로운 경험'이라면



“내 지식과 정보의 대부분은 전 세계를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를 경험해서 얻은 게 아니라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얻은 것입니다.” - 유발 하라리   

       




‘여행을 떠나라’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면, 아마 ‘여행은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 준다’는 것이 아닐까? 여행을 하는 동안 크고 작은 경험을 통해 분명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여행은 정말 비효율적인 ‘배움’의 끝판왕이다. 돈도 써야 하고, 시간도 써야 하고, 체력도 써야 한다. 게다가 이 정도로 돈과 시간과 체력을 썼다면 여행이 새롭게 환기해주는 것들이 분명 있어야 하는데, 생각해보면 내게 그렇게까지 특별한 환기가 되어준 건 없었던 것 같다.


실패도, 허투루 쓰는 시간도 용납해주지 않고, '가성비'를 외치는 사회에서 여행이 '소비'가 아닌 '경험'으로 통용되기엔 어폐가 있다는 말이다.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의 저자인 유발 노아 하라리는 이렇게 말한다.      


“내 지식과 정보의 대부분은 전 세계를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를 경험해서 얻은 게 아니라 집에서 책을 읽으면서 얻은 것입니다.”      


경험에는 여행과 같은 직접 경험과 독서를 비롯한 간접경험이 있다고 한다.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모든 걸 다 직접 체험해보고 살아갈 수 있을까? 직접 경험을 하기엔 물리적인 이유 말고도 시간적·경제적 이유 등 여러 이유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독서는 삶을 통한 간접경험이고, 직접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기도 한다. 시행착오도 없다. 이미 누군가의 시행착오를 살펴볼 수도 있으니까.     


여행과 독서의 경중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내 여행의 질이 어떤 독서를 하는 것에 비해 더 깊이 있는 경험인지 묻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은 '여행'의 가장 오래된 캐치프라이즈다. 감흥이 덜하고 더하고를 떠나서 실제로 보는 것과 간접적으로 그려보는 건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저 진짜 ‘눈’으로 본 것이 깊이와 무관하게 우위에 설 수 있는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럴 때면 루브르의 가장 인기 작품 중 하나인 <모나리자>를 떠올려 보자.


스물둘, 처음 <모나리자>를 보고 온 날, 나는 너무나 멀리서 본 모나리자에 어떤 감흥을 받아야 하는지 당혹스러웠다. 줄을 서서 인파 속에서 겨우 몇 초를 본 후 물러나야 했고, 그것마저도 너무 멀고 그림은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작았다. 미술을 전공했던 언니는 ‘내게 전시된 작품도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지만’이라는 단서를 달며 실은 진짜 <모나리자>는 박물관 수장고 깊은 곳에 있다고 했다. 감흥을 못 느끼는 게 무리는 아니라는 위로였는데, 그 뒤로 약간의 불신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모나리자>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모나리자>만큼이나 ‘<모나리자>를 보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사실 <모나리자>를 보려면 한참 인파 속에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보려고 보지 않아도 보게 된다. 사람들은 차례차례 기다려 줌을 당겨 사진을 찍거나 모나리자와 내가 같이 나오는 인증샷을 찍고 빨리빨리 빠져줘야 했다. 원활한 진행(적당히 보고 빠져주는 분위기)을 위해 시큐들이 지켜보고 있는 분위기까지. 감상은 고사하고 눈으로 보긴 본 거라고 말해도 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작품을 확대해 세밀한 붓 터치까지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구글 아트&컬처 프로젝트와 실제 눈으로 감상하는 감동은 분명 다르겠지만, 가끔은 이 체력과 시간과 돈을 들여 본 게 ‘겨우’ 이거던가? 싶을 때가 있다. 오히려 책으로, 영화 속 장면으로 만났던 그 ‘첫’만남이 더 강렬했던 것도 같다. 직접 보는 게 언제나 큰 감흥을 주는 게 아니었다는 경험을 떠올려 보면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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