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은 칼퇴와 정반대란 말이오
정규 교육과정을 밟아오며 우리는 국어시간에 숱하게 많은 주제 찾기 훈련을 받아왔다.
그때는 그저 한 문제 더 맞기 위한 연습에 불과했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주제를 찾는 것은 삶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나의 목표는 별 게 없다. 최대한 근무시간 내에 모든 일을 마칠 것. 그리고 칼같이 퇴근할 것.
내 소소한 목표 달성에 아주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은 어쩌면, 어린 시절 무지성으로 했던 독서, 그 속에서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던진 질문이 아닐까.
주제 찾기는 국어 시간에도, 글에서도, 직장에서도 중요했다.
조금 안타까운 한 동료가 있었다.
그는 성실하다. 매사에 열심히 하려고 한다. 늘 웃고 있으며 친절하다.
나는 다른 팀이었지만, 그와 물리적 거리가 가까웠기에 모르고 싶어도 자꾸 들리고 보였다.
언젠가부터 점점 그의 상사가 그를 호출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고 더 오래 지나지 않아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의 상사는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완곡한 화법을 애용한다.
어느 정도 말하면 알아 들어주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그에게는 무리다.
그의 상사는 그날도 고유의 완곡어법으로 그가 가져온 보고서에 코멘트를 남겼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가? 없어도 될 것 같지 않아? 음, 그리고 이거는 과장님이 보시고 괜히 더 질문하실 것 같은데? 간단하게 다시 정리해와 봐요.”
내 귀에는 ‘그 내용은 빼고, 최대한 트집 잡힐 것 없게 중요한 것만 간결하게 보고서에 넣어.’로 들렸다.
이내 모니터 앞에서 머리채를 붙잡은 그가 보였다.
이번엔 무사히 잘 넘어가길, 전달되지 않을 혼자만의 응원을 보냈다.
슬프게도, 그는 또 한 번 깨졌다.
정확히 상사가 지시한 핵심만 횡단보도의 까만 부분만 밟고 지나가는 것처럼 피해 갔다.
1. 그 내용은 뺄 것
2. 간단하게 쓸 것
그에게 빼라는 내용은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고(그래서 삭제할 수 없었던...),
과장님이 보시고 더 질문할까 봐 더 자세히 썼다. 흑흑.
직장에 출근하여하는 일은 ‘나’를 위한 일이 아니다.
(사회는 '나'를 위해 돈을 주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닌 걸 알지 않는가!)
내가 아닌 ‘다른 정해진 대상’과 ‘그를 위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일이다.
미션지가 온다. 슬프게도 그 미션지는 나의 창의력을 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창성을 발휘하는 순간, 판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엉엉.
미션지에 적혀있는 문장을,
그 미션지를 만든 사람의 의도에 맞추어 실행하는 게 직장인의 미션이다.
만든 이의 의도를 가장 먼저 생각해보자.
그러면 그 미션의 절반은 지났다! 열쇠를 얻고 나면 그 뒤는 술술 풀리기 마련!
자의적 판단으로 만든 보고서가 두 번 만에 통과하면 다행이다.
세 번, 네 번도 다시 빈 화면의 깜빡이는 커서를 노려보는 일이 셀 수 없다.
잘 모르겠으면 그냥 물어보자.
아직도 가게 점원과의 대화가 괜히 부끄럽지만, 직장에서 만큼은 물어보는 것만큼 빠르고 정확한 게 없다는 것을 울고 웃으며 배웠다.
“… 이렇게 이해했는데, 제가 이해한 바가 맞을까요?”
“이렇게 하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