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난다

마주친 골목에서 웃을 수 있게

by 유영

커다란 솜뭉치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느다란 실들이 얽혀있듯, 세상도 그렇다.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피할 수 없는 관계들이, 자세히 봐야만 볼 수 있게, 얽히고설켜있다.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사람들 다 만나고 오겠는 것처럼


걷다 보면 의외의 골목에서 반가운 얼굴과 피하고 싶은 얼굴을 마주친다.




내게 이 신기한 경험은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생 시절 A도시에서 1시간 거리의 B도시로 이사를 갔다. A도시에서 몇 년을 같은 반에서 친하게 지낸 친구(a라고 하겠다)가 있었다.

훗날 전혀 다른 C도시의 새로운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그 애의 친구 얘기를 듣는데, 불현듯 잊힌 a가 생각나는 거다. 설마 싶어서 혹시 이름이 a냐 물었고, 맞아서 서로 아주 놀랐던 기억.

a가 중학생 때 C도시로 이사를 갔고, 그때 같은 반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전혀 다른 도시에서도 나를 아는 이와 이어지는데,
동종업계는 오죽하겠는가.


내 발령지는 범위가 꽤 넓음에도 하나씩 건너가다 보면 전부 알 것 같이, 보이지 않는 다리로, 우리는 이미 연결되어 있는 게 분명하다.


처음에도 쓴 적 있지만, 내 첫 발령지는 꽤 먼 거리의 시골로 다음 발령 때 가산점을 받는 곳이었다.
그곳에서의 근무기간을 어필해서 나는 집 근처로 옮길 수 있었다.


전혀 관련 없는 새로운 곳에 인사 간 날, 상사분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봤다.
‘내가 말하면 아시려나…’ 싶었는데, 그분이 갑자기 반가운 기색을 비치더니 본인도 바로 그 옆에서 근무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분은 내가 온 지 얼마 안 되어 다른 지역으로 또 옮기셨는데, 알고 보니 지금 우리 팀장님과 아주 막역한 사이였다.


또 어느 자리에서는
원치 않게 떠나서 올 거라 전혀 예상 못한 전 팀장님이 왔다.
같이 지낸 정이 있으니 먼저 찾아가서 인사하고 돌아왔다.


몇 시간 후 어쩌다 앉다 보니 나, 그, 현 팀장님 셋이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그 둘은 얼굴만 아는 사이라 나를 매개로 대화가 시작되었고, 술잔을 꽤 많이 부딪혔다.

전 팀장님은 말이 진짜 많은 사람이었는데, 나는 다행히 남의 이야기 듣는 걸 좋아했다.
덕분에 나는 좋은 말로 옮겨졌다.


돌고 도는 세상.

인내했던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살렸다.




햇병아리 시절에는 눈앞의 일더미에 가려 ‘평판이 인사를 만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조금 지나고 보니 내 앞길을 스스로 헤쳐갈 수 있게 하는 건 바로 나였다.

인사는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이미 짜여진 큰 판에 우리는 퍼즐처럼 끼워졌다.
그래서 더더욱, 평판이 중요했다.

몇 번의 인사 시즌을 거치며 저절로 ‘적을 만들지 말자’는 문장이 마음에 새겨졌다.
다시 안 볼 것 같아도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 게 우리네 삶이더라.

인간은 태초부터 남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질서를 배웠다.
인류 언어 발달에는, 뒷담화가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결국 말이 우리를 엮고, 그 말이 우리를 만든 셈이다.

우리 인간의 역사에서 남 이야기 - 험담뿐 아니라 모든 이야기 - 는 빠질 수 없고,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다.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의 발목을 잡지 않게,
친구가 되진 못해도,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칠 때 웃으며 인사할 수 있도록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뎌본다.



'tiny'에서 '유영'으로 필명을 바꾸었습니다.


작은 세계를 사랑하던, 작은 것 그 자체였던 tiny는

이제 그 작은 세계를 유영하려 합니다.


이름만 바꿔보았어요.

말랑한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