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도 있다.

에필로그

by 유영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처음으로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마법에 걸린 것처럼,
아니 마법에서 풀려난 것처럼
한껏 조여 오는 무언가가

터져 나가는 걸 느꼈다.




짬을 먹는다는 건,

조금은 고상한 언어로 써보자면
연륜이 생긴다는 건,

생각보다
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직접 살아오면서
어쩌면 무뎌지고,
어쩌면 단단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근무를 시작한 지
채 10일도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꼭 어떠한 일은 일어나기 직전에
귀신같이
등을 타고 내려가는 서늘함으로
예고를 한다.

나는 그 서늘한 등골을
직감하면서도
어떤 징조인지 알지 못하므로
그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날따라 정신이 없었고,
그날따라 유독 예기치 못한
일정이 생겼다.

그 정신없는 틈 사이에서
나는 같은 일을 두 번 처리했다.




잘못된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 아래에서부터
견딜 수 없는 무언가가
끓어올라 결국 바깥으로 터지고 말았다.

나는 너무 창피했고
처음 느껴보는 자괴감이
통제 불가능 상태로 흘러내렸다.

"괜찮아. 해결 못할 일은 없어."

찬바람 맞으며 길을 헤매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해 쓰러진 사람처럼
따뜻한 불빛, 그 이후로는 기억나지 않는다.

일은 결국 잘 해결되었다.



모든 생명이 태어난 직후에
숨이 가빠오고
제대로 일어서지 못해
다리가 부들거리는 것처럼

사회생활의 처음에는
그렇게 아주 작은 일에도 떨리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많았다.

그런 밤들이 쌓여가며
일어서고, 걷고, 뛰고,
넘어지다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모두 다 그럴 수도 있다.
당시엔 어쩔 수 없던 일들.

"괜찮아, 걱정 마. 그럴 수도 있지."

이제는

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는 문장.

내가 받은 격려의 바통을
또 다른 이에게 이어가고,
그 바통을 받은 이는 다음 사람에게 이어가는
그 마법 같은 말을

조금 짬이 먹은 나 스스로도
되뇌어 버티고 있다.

그럴 수도 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