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주 작은 용기로 지킨 하루

by 유영

지구는 늘 자신의 궤도를 돌뿐인데,
인간이 만들어 낸 시간은
올림픽 같은 축제의 주기도 만들지만
연말 연초의
안 그래도 바쁜 시기에
수많은 회식 자리까지 만들어낸다.

뭐,
인사철은 정해져 있으니 어쩔 수가 없다.

헤어짐 앞에서는
같이 있어 힘들었던 사람에게도
막상 아쉬움을 건네게 되고,

새로 들어오는 팀원에게는
반가움의 표현이 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매년 겪는 일임에도
물론, 조금씩 의연해지고 있지만,
싱숭생숭해지는 순간들.




매서운 겨울의 가지 끝에
걸린 바람이
출근길 옷자락을 파고든다.

한 해가 기울어가는 것을
감상적으로 바라볼 겨를 없이,
언젠가부터 펑펑 내리는 첫눈과 함께
정산과 각종 자료를 요청하는
문서들이 쏟아져내린다.

눈사람처럼 꼿꼿이
어두운 사무실 속에서
야근하기도 바쁜데,
각종 회식까지 참석하라니
보통 강행군이 아니다.

내 개인의 생활은
가을이 저물 때부터 진작 포기했고,
'나'는 '직장인'이 되어
매일 출근할 때 입는 패딩과 한 몸이 되어
무채색이 되어간다.




새로운 팀원을 맞이하는,
사실은 같은 해이지만,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번 가다듬게 만드는
새로운 해가 떴다.

나는 사실 꽤 많이 지쳤다.

수영 강습도 빠진 지 오래되었고,
의지가 필요했던 피아노 연습은
더욱더 소홀하게 되었다.
일기장은 텅 빈 페이지가 차곡차곡 쌓여갔다.

각자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고,
환영회 이야기가 나왔다.

"모두들 환영합니다.
환영회 해야죠.
점심과 저녁 중에 언제가 좋으세요?
정말 아무 때나 괜찮습니다."

팀장님의 마지막 한 마디에,
늘 '좋아요, 좋습니다.'만 반복했던 나는
이번엔 용기를 조금 내어보았다.

'진짜 괜찮으신가?'
아주 잠깐 망설였지만,
이번엔 머리보다 입이 아주 조금 더 빨랐다.

"그럼, 점심 어떠세요?"

저녁 회식이 실제로 나름 재미있고
술도 좋아하는지라
늘 '저는 괜찮습니다.'로 일관해왔는데,
이번만큼은 쉬어가고 싶었다.

다른 팀원들이 동조해 주려나.
안되면 말지, 싶은 마음에 꺼내 보았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더 좋았다.

"점심 좋습니다!"
"그래요. 그럼 점심으로 하죠."

기존 팀원들과는 늘 저녁을 먹었던지라
그날 나는 이 팀에서 처음으로 점심을 먹었다.

생각보다 점심도 화기애애했다.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고,
크고 작은 웃음들이 가득했다.

마무리로 테이크아웃 해 온 커피까지
완벽했다.
기분 좋게 다시 오후 업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쩌면
늘 있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생각은 비슷할지도 모른다.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직장인에게
눈치는 당연히 필수적이지만,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주 작은 용기로
나를 지키는 선택을 해보았는데,
여러 마음들이 편해졌다.

그리고 생각보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너무 쫄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