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취미에만 존재하는 구분
세상은 넓고 덕후는 많다. 어쩌다 보니 덕질의 대상이 재즈 바이닐에서 아이돌로 옮겨갔지만 (아니, 넓어졌지만) 그 기저에 있는 하나의 마음만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애쓰지 않아도 마음을 쏟을 수 있는 무언가에 끊임없이 시간과 마음을 (그리고 돈을) 쏟고만 싶은 마음. 아무리 자주, 오래 보고 들어도 질리지 않고 이것에 관한 얘기라면 2박 3일 날밤을 새더라도 전혀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에너지와 마음이 끊임없이 솟아난다. 그런다고 누가 뭘 해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좋아, 그냥 좋아! 계속 이것만 하고 싶어!
마음에 드는 재즈 바이닐 디깅에 성공한 주말이면 월요일 출근 따위는 저 멀리 제쳐두고 하루 종일 그 바이닐만 듣고 있고 싶었다. 새 바이닐을 조심해서 닦아내고 턴테이블에 얹은 뒤 커피 한 잔을 내린 다음, 그 바이닐에 대한 이야기들을 검색하며 곡과 앨범에 대한 정보들을 하나씩 읽어 내려갈 때면 그렇게 마음이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한 친구는,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기 전부터 커뮤니티에서 새로운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다 게임이 출시되면 곧잘 밤을 새우고 그 게임을 하곤 했는데, 어째서인지 밤을 새도 얼굴은 훨씬 좋아 보였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그런 건가 보다. 나의 다른 것을 조금 포기하고서라도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무언가에 시간을 쏟는 것. 물론 그것이 나의 본업이나 생계에 지장이 갈 정도여서는 안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밸런스를 맞출 수 있게 되기까지에는 짧든, 길든 시행착오의 기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주변인들이 나에게 취미를 물어왔을 때, 재즈 바이닐 디깅을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대체로 이러했다.
"우와, 멋있어요!"
"나도 들을만한 거 추천 좀 해 줘."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야?"
그렇다. 나는 20대 중반쯤부터 지금까지 바이닐 디깅을 취미로 이야기했을 때 정말 단 한 번도 부정적인 리액션을 경험한 적이 없다. 반 정도는 새로운 취미에 눈을 반짝이며 멋지다는 말과 함께 관심을 가져주었고, 나머지 반은 언제 한번 본인에게도 바이닐 디깅에 대해 알려달라며 함께 취미를 즐기기를 원했다. 바이닐 디깅은 나에게 그런 취미였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남들에게도 멋져 보이는, 그래서 이런 멋진 취미를 가진 나 자신이 한층 더 멋진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게 해 주는 아주 신기한 취미.
그렇지만 아이돌 덕질을 시작하고 먼발치에서만 듣던 그 단어가 나의 인생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일코'.
'일반인 코스프레'의 준말인 이것은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취미 생활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일을 말한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바이닐 덕후의 삶을 살 때에는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이 취미 생활을 감춰야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고, 또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간단하게 말해, '바이닐 덕후'가 아닌 사람을 '일반인'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돌 덕질에서는 왜?
나는 입덕 후 몇 주 정도는 그룹 X에 미안할 정도로 나의 입덕을 감췄다. 흔히 말하는 입덕 부정기 같은 것이 아니라, 나의 입덕은 일찌감치 받아들였으나 그 사실을 굳이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고 해야 맞겠다. 그때는 왜 그래야만 하는지 그 이유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그냥 왠지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결단코 내가 좋아하는 그룹이, 나의 최애가 된 그 친구가 부끄러웠던 것은 아니다. 입덕 전에도 나는 나의 아이돌 덕후 친구들을 늘 응원했고,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기도 했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도, 그 기분을 다시 끌어올려 줄 가장 빠른 길을 가졌으니까. 지금의 내가 그렇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내가 입을 닫았던 이유는 아마 내가 경험한 마지막 아이돌 문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한다. 내가 아이돌에 처음 관심을 가졌던 2000년대 초, 그때에는 아이돌 팬덤에 관한 이야기가 아홉 시 뉴스와 각종 신문의 사회면에 실리던 시절이었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에 가기 위해 무단 조퇴를 하는 학생들, 어떤 멤버의 탈퇴를 반대하며 시위를 하는 팬덤, 팬덤과 팬덤 간의 갈등, 아이돌 팬덤의 악플 문제... 그때도 아이돌은 누군가의 꿈과 기쁨이었을 테고, 덕질이 개인에게 주는 긍정적인 변화 또한 있었겠지만 대중에게 비치는 이미지는 대체로 부정적인 부분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아이돌 팬덤을 대신하는 단어가 빠순이, 빠돌이라는 비하의 의미를 가진 단어였으니.
누군가 사랑과 가난,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고 했던가. 이유도 모른 채 입을 닫고 있던 나였지만 결국에는 꾹꾹 눌러왔던 무언가가 재채기처럼 터져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내 입꼬리가, 내 눈이, 내 귀가 반응했다. 네이버 메인 기사에 그룹 X의 이름이 보인다거나, 생각지 못했던 콘텐츠에서 나의 최애가 언급된다거나, 멤버와 닮은 동물이나 캐릭터를 발견한다거나 할 때에는 나도 모르게 그것들을 클릭하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집에 인형들이 늘어난 것은 기분 탓인가). 케이팝 열풍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도쿄 신오쿠보의 어떤 가게에서 우리 애들 (그룹 X를 말한다; 앞으로도 종종 이럴 것이다)의 노래가 나오면 괜히 조금 더 머무르기도 했다. 이 사람들과 이다지도 조용하고 소란스럽게 내 일상을 나눠가지게 된 것이다.
가장 먼저 나의 입덕 소식을 전한 사람은 나의 고등학교 친구이자 같은 그룹 X에 먼저 입덕한 A였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만 나오는, 나의 입덕 전 A와 그룹 X에 얽힌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때는 지난 5월, 오랜만에 휴가를 내어 한국에 방문했던 때였다. 오랜만에 A를 만나 밥도 먹고 네 컷 사진도 찍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때 갔던 네 컷 사진관에서 연예인 포토프레임을 발견한 나는 연예인이랑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한 나머지 '이거 찍어볼래!' 라며 패기 있게 외쳤다. 이제 문제는 누구의 프레임으로 찍는가였다.
"그럼 내 최애랑 찍어 볼래?"
A도 농담처럼 이야기했으나 그저 연예인 포토프레임을 경험해 보고 싶던 나에게는 누구든 상관이 없었기 때문에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멤버는 그룹 X의 멤버 H, 얼떨결에 나는 입덕 후에 길이길이 후회와 안도를 동시에 느끼게 될 사진을 얻게 된 것이다. '나는 왜 그때 입덕을 안 해서 I와는 사진을 찍지 못했는가'에 대한 아쉬움과 '그래도 H랑 찍어서 너무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번갈아가며 들 줄은 몰랐지.
그러니 I야, 늦은 나를 위해 다시 한번 찾아와 주렴.
A에게 나의 입덕을 밝히고 난 후, 나의 세상은 조금 더 넓어지고 행복해졌다. 언제든지 그룹 X에 대한 이야기를 할 친구, '덕메 (덕질 메이트)'가 생긴 것이다. 먼저 입덕한 A가 풀어주는 그룹 X에 대한 이야기들은 늘 새로웠고, 애정을 기반으로 한 스토리텔링은 언제 들어도 환상적이었다 (원래 입담이 좋은 친구인 것도 한 몫했다). '덕메'의 짜릿함을 느낀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어덕행덕'이라고 하지 않나.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해야겠다 싶어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덕계 (덕질용 계정)를 만들었다. 같은 팬덤의 사람들로 가득한 덕계는 뭐랄까, 비공식 팬카페 같은 느낌이랄까. 알고리즘이 무작위로 그룹 X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는 다른 덕계들을 보여주니 언제든 그 덕계에 접속하면 온전히 그룹 X만 볼 수 있거든.
이 덕계를 만든 것은 어떤 의미로 나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앞서 말한 '일반인'인 나와 '덕후'인 나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방법이자 마음먹고 덕질에 시간을 쏟는 때 이외에는 나의 일상에 조금 더 집중하겠다는 나의 각오. 이렇게 결국 '일반인 코스프레'를 그만둔 나는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일반인이겠지만 적어도 이 아이돌 판에서는 일반인이 아니게 되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20대 후반에 웬 아이돌이냐며 한심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런 타인의 시선들이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음을 안다. 물론 이마에 '나 그룹 X 팬이에요!'라고 써붙여놓고 다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애써 이들을 숨기는 것이 드물게 나의 인생에 찾아온 확실한 행복을 감추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 날부터, 자연스럽게 누군가에게 '나는 그룹 X가 잘됐으면 좋겠어.'하고 이들의 팬임을 고백하는 순간이 벅차오르는 날들이 있었다. 이들의 어떤 모습이 나를 이렇게 행복하게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순간이 또다시 나를 떠오르게 하기도 하고.
그러니 아무리 나의 마음이라고 하더라도 왜인지 선물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내가 이들이 아니었다면 내 빠듯한 일상에 이렇게 가깝고 확실한 행복의 색을 입힐 수 있었을까. 사실은 내가 너희의 청춘을 담보로 이 행복을 빌려다 지금의 나를 푸르게 하는 데에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하여 나는 선물 받은 이 마음과, 덕분에 푸르른 나의 지금을 소중히 여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렇게 키워낸 나의 초록이 너희의 미래에 작더라도 튼튼한 행복의 싹을 틔우길 바라며.
나의 입덕을 고백한 순간에 A는 이렇게 말했다.
"즐겁다, 너랑 동방신기, 빅뱅 이야기하다가 다시 X에 대해서 이야기하니까."
열일곱에 함께 그리다 기억 저편으로 묻혀버린 A와 나의 오래된 캔버스 위로 십여 년의 시간을 넘어 어떤 새로운 색이 입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지금의 A와 나는 다시금 푸르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