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덕후, 좋아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기로 마음먹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중등 교과 과정 사회 과목에서 이 말을 처음 접했던 것 같다.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끊임없이 다른 개인과 상호작용하며 관계를 유지하고,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동물이라는 의미로 '인간'의 특성을 설명한다. 인간은 각자의 방식으로 타인에게 나를 내비치고, 감정을 공유하고, 공감과 인정을 갈구한다. 이렇게 만든 인연들과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가끔은 갈등도 빚으며 점점 두터운 관계를 형성해 나간다.
이 모든 것은 '덕후'의 사회에서도 통용된다. 덕후도 늘 본인의 덕질 대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의견 차이가 있는 다른 덕후 혹은 부외자들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대체로 인터넷상에서 일어나는 이 상호작용은 늘 덕후들의 키보드를 불타게 한다. 나의 애정하는 덕질 대상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 가끔은 덕후만이 (팬만이) 할 수 있는 신랄한 피드백까지 (내 새끼한테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의 마인드랄까). 그 모든 걸 열심히 쏟아내기에는 24시간도 모자라다.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기에 앞서, 먼저 '덕후'라는 단어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 볼까 한다.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 御宅'가 어원인 '오덕후'의 준말이다. 그렇다면 '오타쿠 御宅'란 무엇인가?
오타쿠 御宅 otaku (일본어)
한 분야에 지나치게 집중하거나 집착하는 사람.
또는 특정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사람.
요즘에야 여러 가지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일본어로 이 말은 그저 '집'을 높여 말하는 단어이다. 존경의 의미를 더하는 '御'와 집을 뜻하는 '宅'가 더해져, '댁'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단어의 의미가 확장되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오타쿠'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처음 이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을 때에는 '집 안에만 틀어박혀서 취미생활을 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 (참고: 매일경제용어사전). 그렇다, 시작은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의 이미지였다. 태생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사회적 상호작용에 필요한 사회성이 부족한.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덕후'라는 단어는 이제 거의 모든 명사의 뒤에 붙을 수 있다. 나 같은 '아이돌 덕후'를 비롯해 밀리터리 덕후, 축구/야구 등의 스포츠 덕후, 각종 게임 덕후, 맥주/와인/위스키 등의 주류 덕후, 운동화/피규어 같은 종류의 수집형 덕후 등, 장르는 끝이 없고 덕후는 무한하다. 의미 또한 더 이상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특정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 분야에 관련된 것들을 깊게 섭렵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에 소비를 아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타겟층으로 자리 잡았다. 충성도가 높고, 열정적인 데다가, 어떤 분야에서는 헌신적이기까지 하다.
게다가 이 덕후들은 이제 더 이상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는다. 각종 커뮤니티와 동호회를 통해 인터넷상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며 서로의 공통된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사회적 상호활동을 이어간다. 오히려 사회성이 없으면 다양한 루트로 덕질을 즐기기 힘든 시대가 온 것이다.
아이돌 판에서는 이 '오프라인 모임'을 줄여 '오프'라 칭한다. 같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덤에 속한 팬들끼리 '오프'를 한다. 그럼 '오프'를 함께 할 다른 팬들은 대체 어디서 찾고 어떻게 만나는 걸까? 공식 팬카페? 아니다. 이 '오프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즘의 덕질 플랫폼에 대해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 해당 문단은 글쓴이가 주로 사용하는 SNS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아이돌 팬들이 사용하는 SNS는 물론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개인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SNS가 결정되는 기준은 그 SNS에 응원하는 아이돌의 공식 계정 및 개인 계정이 존재하는가의 여부가 아닌가 싶다. 추가로 편리한 UI로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가, 그리고 어느 정도의 자유가 보장되는 익명성이 있는가 또한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공식 팬카페가 제외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누군가가 관리하는 카페라는 특성상, 게시판이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팬들끼리 실시간으로 소통하기에는 여타 SNS에 비해 크게 적합하지 않다. 무엇보다 익명성이 보장이 되는 듯 보장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가 응원하는 아이돌이 그 팬카페에 가입되어 있다. 소속사도 있다. 그런데 나의 개인정보가 운영진에게 있다. 하고 싶은 말을 필터링 없이 다 했다가는 내용에 따라 까딱하면 애써 등업 해 놓은 등급이 내려가거나 공개 활동에 참가하지 못하는 등의 불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부적절한 말을 한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꼭). 물론 익명이라는 장치에 숨어 할 말, 못할 말 무작정 쏟아내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허용되는 선에서 같은 팬들과 자유롭게 소통을 할 플랫폼은 아이돌 덕질의 생태계 상 어느 정도는 필요하고, 그러기에는 공식 팬카페란 어딘가 불편하다.
트위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앞선 글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그래서 입덕을 하고 부랴부랴 다운로드한 앱이 바로 트위터이다. 겪어보니 요즘 덕질을 하는 데에, 특히 아이돌 덕질을 하는 데에는 구 트위터 현 X 가 필요하다. 있으면 좋은 정도가 아니라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없으면 여러모로 곤란하다. 트위터의 가장 큰 특징은 1) 익명의 글 작성과 공유가 간편하고 2)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바꿔 말하자면 1) 내 글도 빨리 쓰고 다른 글도 빨리 퍼다 나를 수 있고 2) 내 아이돌의 최신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팔로우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타임라인 자체는 나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알고리즘의 추천을 받기 때문에, 내가 팔로우하는 유저가 아니더라도 관심사만 일치한다면 그 정보 또한 얻기가 용이하다. 다만, 종종 내가 원하지 않는 내용에 또한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은 가끔 힘들 때도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내가 트위터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트위터 시작 하루 만에 깨달아 버린 것이다. 실시간 플랫폼답게 매 초마다 업데이트되는 정보들, 한 번 지나치면 다시 찾아내기 힘든 피드, 한 게시물 당 글자 수 제한이 존재하다 보니 가끔은 맥락을 찾기 힘든 내용들. 그리고 리트윗 (재게시)한 게시물은 왜 삭제가 안 되는 건지. 20대 후반인 내가 하기에 이런 말이 적절하지 않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순간 '내가 요즘 SNS를 따라가기에는 벌써 너무 늙은 건가'하는 기만에 가까운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익숙해지기로 했다. 이제 트위터를 '보는' 것에 많이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트위터로 '소통'을 하는 건 힘들다. 아마도 당분간은 쭉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인스타그램, 사진도 글도 얼마든지!
그래서 익숙한 곳을 찾았다. 바로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에 덕질용 계정을 만들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도 마음껏 쓸 수 있고, 사진도 10장 (트위터는 4장), 게다가 스토리라는 휘발성 게시물까지. 오래 간직하고 싶은 내용과 24시간만 간직할 말을 나눠서 업로드할 수 있다. 팔로우 기반의 SNS인 만큼 트위터처럼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실시간 정보를 얻을 수는 없지만, 바꿔 말하면 얼마든지 나의 속도대로 흘러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내가 '인스타그램형 인간'임은 아마도 내가 파워 F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MBTI 성향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무언가 하나를 봐도 머릿속에 너무나 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그걸 140자 내외로 압축하여 트위터에 쓰기에는 뭔가 아쉽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룹 X로부터 느낀 것들, I에 대한 마음들을 인스타그램에 써 내려가기 시작했고, 지금도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놀랍게도 올해 7월 즈음 개설한 나의 덕계에는 몇 달이 지난 지금 벌써 700명이 넘는 팔로워 분들이 계시고, 자주 DM을 주고받으며 언제든 나와 그룹 X에 대해 떠들어주는 소중한 덕메들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작은 숫자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게 무슨 의미냐 싶겠지만, 생각보다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이라는 건 꽤나 특별하다.
이렇게 I는 고맙게도 또 한 뼘 나의 세상을 넓혀 놓았다. 그러니까, 오로지 너를 좋아하게 된 마음 하나가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또 한 걸음 나아가게 했다는 말이다.
그렇게 인스타그램 덕계를 운영하고, 지난 10월의 마지막 날 우연히 스토리 기록을 보게 되었다. 이게 웬 걸, 8월부터 하루도 스토리를 올리지 않은 날이 없는 것이었다. 이게 말이 되나, 내가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이었다고...? 그도 그럴게, 나의 본 계정에는 두 달째 새로운 피드가 없고 스토리 또한 빈 날이 더 많다 (좀 귀찮다). 그런 내가 세 달을 하루도 빠짐없이 I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룹 X에 대해 생각했다니. 이건 사랑이다, 사랑이야.
그래서 더더욱 '좋아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기로 했다. 애쓰지 않아도 좋아하는 것에 꾸준할 수 있도록 무언가를 좋아하는 그 행위 자체도, 내가 좋아하는 그 대상 자체도 부지런히 좋아하기로 했다. 애정의 크기는 비교할 수 있는 게 아니라지만,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던 것 같다.
'아, 내가 뭔가에 이렇게까지 마음을 쏟은 적이 있었나?'
내가 마음을 보냈던 모든 것들을 떠올렸다. 그 당시에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니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도, 당신도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해 봐야만 한다. 그게 무엇이 됐건, 언제가 됐건, 스스로가 무언가를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그렇게 나는 I를 만나고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내가 무언가에게 마음을 주고 또 줘도 아깝지 않을 수 있는 깊이의 사랑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삶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한 타인에게 쏟을 수 있는 이렇게나 깊은 마음이 나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정영욱 작가의 에세이 '잔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에 이런 글이 있다.
너를 너무 사랑해서, 나를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래, 아마도 너의 발자취를 사랑하며 나는 지금처럼 새로운 나의 모습들을 알아가겠지. 좋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변해가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 때라던데, 그 말대로라면 나는 아마 이렇게 좋은 사랑이 뭔지 배워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나를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는 믿음까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