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세상과 당신을 이어주니까요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삶에 크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생각해 보자. 우리 집 고양이가 언제 제일 귀여운지, 최근 들었던 음악들 중에 어떤 음악이 왜 좋은지, 언젠가 본 영화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무엇인지, 좋았던 여행지는 나에게 어떤 멋진 기억을 남겼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순간에 가장 사랑스러운지.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얼굴을 좋아한다. 그 이야기를 할 때의 환한 표정이 좋다.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나의 순간 또한, 아마도 어떤 방향으로든 긍정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라 감히 확신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나눌 상대가 있다면 그 기쁨이 배가 되었을 테다.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에 대해 함께 공감해 줄 누군가가 있고, 내가 미처 몰랐던 모습에 대해 알게 되며 그 대상을 더 사랑하게 될 테니. 흔히들 공통의 적이 있으면 빨리 친해진다고들 하지만 그것은 공통의 사랑하는 대상이 있을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공감대가 존재한다면 관계의 시작이 0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미 0에서 시작하지 않는 관계라는 것을 이 팬 커뮤니티에서 생각해 보면, 같은 아이돌을 좋아한다는 것이 그 시작이겠다. 트위터 (X로 명칭이 바뀌었으나 아무래도...) 이든 인스타그램이든,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기 위해 만든 덕질용 계정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른 계정들을 팔로우하거나, 그런 콘텐츠나 게시글 등에 좋아요를 눌러 나의 알고리즘을 그쪽으로 맞춰야 한다. 나는 처음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덕계를 만든 후에 그룹 X에 대해 검색하며 흔히 말하는 '네임드' 계정들을 시작으로 여러 계정들을 팔로우하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이젠 따로 뭘 하지 않아도 나의 피드가 그룹 X에 관한 게시물들만 보여 준다. 그렇지 않았다면 평생 볼 일도 없었을 수년 전 심연의 콘텐츠까지 끌어올려 주기도 한다. 알고리즘이란 여러 의미로 아주 위대하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수많은 계정들 중 나와 덕질의 방향이 같은 계정들이 눈에 띄게 마련이다. 최애가 같다는 이유도 물론 큰 이유이겠지만, 그 이상으로 나와 결이 맞는 것 같은 계정들이 있다. 나와 좋아하는 포인트가 같다거나, 잔잔하든 유쾌하든 그 감성의 주파수가 맞다거나, 혹은 덕질의 방향성이 같다거나 하는. 그러다 친해지고 싶은 계정을 발견하면 용기 내어 DM을 해본다거나, 트위터의 경우 트친소 (트위터 친구 소집: 보통 나의 취향을 알리며 시작한다)를 통해 트친 (트위터 친구)을 구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함께 덕질을 할 덕메를 늘려간다. 그 인연이 쌓이고, 시간이 쌓이면 점차 오프라인에서 만남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렇게 온라인에서 만난 덕메를 실제로 만나는 것을 '오프'라고 하더라.
지금에야 나도 '오프' 경험이 몇 번 있지만, 사실 꽤나 보수적인 성향의 글쓴이는 처음에 이 '오프'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을 어떻게 실제로 만나? 누군 줄 알고? 여담이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시사 범죄 프로그램을 매우 즐겨보는 나로서는 인터넷상의 '익명'이라는 것을 굉장히 불신했고, 그래서 조금 무섭기도 했던 것 같다. 이런 나에게도 첫 번째 오프가 있었는데 무엇이든 처음의 경험과 기억이 중요하듯 나에게도 이 첫 오프가 그렇게 남았다.
나의 첫 번째 오프 상대는 도쿄에 있는 내 친한 친구의 아는 언니였다. 내가 처음 그 친구에게 그룹 X 입덕 사실을 알리자, 그 친구가 본인의 지인 중에도 그룹 X의 팬이 있다며, 언젠가 소개해 주겠다고 했었는데 지난 10월 즈음 그 언니가 일본 여행을 오게 되며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러니 완전한 익명의 타인은 아니었던 것이 나를 첫 오프로 이끈 셈이다. 공교롭게도 그 언니의 최애 또한 나와 같은 I였기에 대화의 물꼬는 생각보다 금방 터졌다. 어떻게 I가 최애가 되었는지, 어떤 점이 좋은지, 그 모든 순간들 중 어떤 모습을 좋아하는지, 제일 좋아하는 I의 목소리는 무엇인지... 말이 처음 만났다 뿐이지 첫 만남에도 우리는 오래 알았던 친구처럼 쉬지도 않고 I와 그룹 X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때의 내가 어땠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마도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를 정도로 들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몰랐던 모습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 그저 I와 그룹 X에 대한 이야기만 할 수 있음에 만족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며칠이 지나고서야 그 무언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 조건 없이 좋아하는 무언가가 공감이라는 날개를 얻어 그 범위가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지는 경험을 하는 것, 그리고 내가 이토록 무언가에 열정적일 수 있다는 것이 이다지도 큰 만족감을 줄 일이었던가.
그렇게 시작된 나의 오프는 두 번째, 세 번째로 이어졌다. 무슨 복인지 그때마다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렇게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들이 생겼다. 해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탓에 한국과 같이 각종 모임의 기회가 적어 회사를 벗어난 새로운 인맥을 만들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로지 같은 그룹 X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나는 또 이 모든 사람들을 이들로부터 선물 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거다. 취미생활을 함께 하는 것을 넘어, 일상 또한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을 말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고, 그 순간의 나를 온전히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인지, 그 와중에도 내가 좋아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모든 시간들이 어쩌면 내가 나 아닌 다른 것에 어떤 마음을 어떻게 쏟는지에 대해 알아갈 시간일 테니까.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열어준 세상에서 다시 한번 내가 온전히 마음을 쏟을 무언가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렇게 나 아닌 무언가를 통해 나를 알게 되는 경험이란, 생각보다 가슴 벅찬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I를 통해 내가 원래 좋아하던 재즈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색들을 더 아끼게 되었고, 취향이던 장르의 다른 얼굴을 사랑하게 되었으며, 순간의 낭만에 집중하는 것이 꽤나 멋진 일이라는 것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또한 I를 통해 새로 만난 세상에서 나의 편협함 또한 깨달았고, 나의 깊은 곳에 숨어있던 편견을 마주했으며, 그 모든 것이 한 번에 부서지는 순간 또한 경험했다. 그저 좋을 줄만 알았던 세상에도 어두운 부분은 존재하고, 그 사이에서 발견한 빛이 얼마나 빛나는지 또한 다시금 깨닫는 날들 속에서 말이다.
한 사람이 오는 것은 그 우주가 오는 것이라지만, 이렇게도 거대한 폭발과 함께 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 폭발이 이다지도 반짝이는 은하들을 만들어 낸다는 것도.
I는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힘들어도 사랑을 하세요, 사랑은 세상과 당신을 이어주니까요.
그룹 X와 I가 만들어 낸 그 거대한 폭발 속에서 나는 대체로 맑은 날들이 이어지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그렇게 I 또한 마찬가지로 사랑을 통해 다른 세상을 본다면, 매 순간 다른 색의 사랑으로 여러 가지 세상을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또 네가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모양의 사랑을 느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리고 네가 만나는 그 모든 세상에서 네가 주고받을 그 모든 사랑들은 네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그렇게 장밋빛 사랑을 통해 만날 새로운 세상에서 대체로 모든 순간에 사랑받고, 사랑하고, 또 행복만 했으면. 네 덕에 내가 새로이 만난 세상에서 내가 대체로 그러하듯이.
안다. 지금에야 이 새로운 세상이 마냥 꽃밭이겠지만 때로는 비바람이 불어 가던 길을 돌아서고 싶은 날들도 더러 있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에 떠오를 무지개가 기대되는 순간들이 있겠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멀어지고, 또다시 만나면서 단단해질 것이다. 그 순간들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다른 모습을 찾아낼 수도 있고.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진 나는 나의 세상을 잘 살아갈 방법을 하나 더 배워낼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