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앞접시 Aug 16. 2020

토토로


엄마랑 티비를 보다 제주도가 나왔다. 엄마는 내게 너 어릴 때 저기 갔던 거 기억나? 라고 물었다. 솔직히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엄마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들으려던 건 아니었는지, 저기? 음..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에서 멈춰 있는 내 대답에 추가적인 질문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약간 죄책감이 들어서 어릴 적 제주도의 추억을 되살려보려 애썼다.


리포터의 제주 은갈치 먹방이 끝날 때까지도, 나는 그곳에서의 추억을 떠올려내지 못했다. 결국 나는 엄청 어릴 때 갔나 본데.. 기억이 안 나, 라고 실토했다. 엄마는 여전히 티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엄마 아빠 결혼하고 신혼여행 제주도로 갔었잖아, 라고 말했다. 내가 다시 물었다. 그때도 나 있었어? 엄마가 답했다. 응 엄마 뱃속에 있었지.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엄마가 고갤 돌려 가만히 날 쳐다봤다. 그때는 참 이뻤는데.. 엄마는 한숨을 쉬며 다시 티비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 그때는 그냥 초음파였는데 뭐가.. 나는 대꾸하길 그만뒀다.



본가에 내려가 있으면 엄마는 종종 나를 빤히 바라보곤 한다. 그리곤 어릴 때는 참 이쁘게 생겼었는데.. 밖에 나가면 다들 공주님인 줄 알았어, 라고 아쉬운 소리를 한다. 그러다 공주님에서 이런 식으로 자라버린 나를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지, 갑자기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주렁주렁 꺼내놓는다. 그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엄마 아빠는 꼬맹이 웅비에게 추억을 만들어주려 지극정성을 다 했던 모양이다. 산도 가고 바다도 가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기억력이 좀 부족했다. 이젠 고3 때 몇 반이었는지도 전혀 기억해내지 못하니, 그보다 더 어린 시절 기억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기억력에 찍지 않은 스텟을 대체 어디에 투자했던 걸까. 지금 보면 뭐 딱히 잘하는 것도 없는데. 이거야 원, 참 다양한 방법으로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


고시원 방에서 넷플릭스를 둘러보다 이웃집 토토로, 를 발견했다. 인기 캐릭터로서의 토토로야 대충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본 적은 없었다. 귀염둥이 거대 다람쥐 대소동, 뭐 그런 영화일까. 썸네일에 커서를 가져대 대고 한참을 고민했다. 참 되는 일이 없었던 하루였다. 그래서 하루 끝의 영화까지 실패해버리고 싶진 않은 까닭이었다. 며칠 전에 벼랑 위의 포뇨, 를 보고 펑펑 울었던 게 떠올랐다. 포뇨가 좋았으니까 뭐 토토로도 나쁘지 않겠지. 썸네일을 클릭하고, 영화가 시작됐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그저 이어폰을 꽂고 눈만 뜨고 있으면 모든 게 술술 풀려나가는, 하루 중 가장 쉬운 시간. 일도 연애도, 요즘 내 하루엔 어려운 일들 투성이었다. 영화의 오프닝 곡이 들려왔다. 나는 삼각 쿠션에 등을 기대고 머리를 비웠다.


그런데 보다 보니 영화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었는데도. 어.. 나 이 여자애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랍쇼 이 까망이들도.. 나 토토로 봤었나.. 아닌데 본 적 없는데.. 그러다 문득, 어.. 나, 어린 시절, 이 까망이들, 기억이, 안다, 떠올랐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꼬맹이였던 시절, 아빠가 나와 동생을 시 외곽의 어느 영화관에 데려다준 적이 있었다. 영화 두 편을 묶어 연속으로 상영해주는 영화관이었다. 아빠는 우리를 상영관 좌석에 앉혀놓곤, 끝나고 영화관 입구로 나오면 아빠가 기다리고 있을게. 웅비는 은지 잘 챙기고, 라며 영화관을 떠났다. 나는 어떤 영화를 보게 될지도 모른 채, 그저 아빠가 시킨 대로 동생 손을 꼭 잡고 빈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곧 상영관의 불이 꺼졌다.


첫 번째 영화가 시작됐고, 끝났다. 이어서 두 번째 영화가 시작됐다. 한 가족이 어느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사 온 집에선 까만 성게 같은 녀석들이 사람의 눈을 피해 돌아다녔다. 가족의 어린 두 딸이 어쩌다 녀석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거기까지가 꼬맹이 웅비가 가진 집중력의 한계였다. 어둠속에서 가만히 앉아 있기가 지루했던 나는, 거대 다람쥐가 등장하기도 전에 동생을 데리고 영화관을 나와버렸다.


나와 동생은 얼마간 영화관 건물에서 나와 시간을 보냈다. 지금과는 달리 가만히 앉아 영화를 보는 것보단 아무 데나 뛰어다니며 바람을 갈라대는 게 더 재밌던 시절이었다. 한참을 둘이서 뛰어놀던 그것도 슬슬 재미가 없어지자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긴급통화, 1541, 그리고 아빠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신호가 이어지고 아빠가 전화를 받았다. 아빠아빠아빠나야나야웅비야끊지마! 당황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가, 어! 웅비 너 왜, 통화 대기 상태로 넘어갔다. 그리고 몇 초 후 사태를 파악한 아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빠 지금 바로 갈 테니까 은지 데리고 영화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어!


얼마 뒤 아빠의 콩코드가 영화관 주차장에 들어섰다. 나와 동생은 아빠 차를 발견하고 호다닥 달려갔다. 차에서 내린 아빠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책 없이 동생을 데리고 영화관을 나와버린 나를 좀 혼냈던 것 같다. 그리고 역시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결국에는 웃었던 것 같다.


다 커서 그때를 돌이켜보니 그것은 아빠한테 꽤나 몹쓸 짓이었다. 주 6일제를 기반으로 돌아가던 터프한 시절에, 애들한테서 겨우 몇 시간 해방되나 싶었을 텐데.. 다시 생각해보니 차에서 내린 아빠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떡잎부터 불효자였던 것이다. 


그렇게 지난 날을 잠시 되돌아본 나는 멈춰둿던 토토로를 다시 재생했다. 느낌상 토토로가 그냥 거대하고 귀여운 다람쥐일 줄만 알았는데, 실제로는 무서운 이빨이 잔뜩 달린 거대 괴물이었다. 토토로가 으어어어! 괴성을 질러댈 땐 이거야 좀 당황스러웠다.


어쩌다 보니 두 번째로 관람하게 된 토토로는 참 재밌었다. 지금도 뜬금없이 불어오는 바람을 만나면 곧바로 고양이 버스, 를 떠올릴 만큼.


그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그때 극장에서 토토로를 완주해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음.. 역시 딱히 바뀌는 건 없었을 것 같네.


작가의 이전글 카운터 푸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