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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무화과 창업 일기 15

책장에 대한 로망과 현실. 그 사이

by 도라



오늘의 일기는 지각이다.
원래 일기는 잠들기 전에 쓰는 거라고 위안을 삼아 본다.

이번 주 나의 일상은 이랬다.

다섯 번의 출근,
두 번의 책방 방문,
두 번의 수강,
한 번의 건강검진,
한 번의 장례식장 방문이 있었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지난주 월요일부터 삼시세끼 집밥 릴레이를 이어오다 이번 주 목요일쯤 되니 풀이 꺾여 외식에 굴복하고 말았다.

목요일에는 폐업하는 영어학원에서 책장 나눔을 한다기에 보러 다녀오는 핑계로 저녁밥을 준비하지 못했다.
26년간 학원 운영을 해오셨는데 건물주인이 바뀌고서 2주 유예기간 후 퇴거를 요청받았다고 한다.

책장은 세월이 무색하게 쌩쌩하고, 책들도 수준별로 공들여 정리되어 있고, 아직 한쪽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고, 입구에 여름을 맞아 등대며 불가사리며 계절 장식도 멋들어진데

'이 참에 다 정리하고 좀 쉬려고요.'
멋쩍게 웃는 사장님.

같이 간 남편은 호기롭게 다음 주에 용달차를 불러 모든 책장과 소파를 가져가겠노라고 말했다.

오래 운영하신 만큼 짐도 많던지라 여러 가지를 처리하느라 피곤하신 듯한 사장님 눈에 기쁨이 반짝였다가 이내 서운함이 서리다가 다시 결심하는 눈빛이 도는 것을 보았다.

이번 주 일요일에는 고정순 작가님의 책방 개업식이 파주에서 열리는데 미리 공개하신 서가가 딱 내가 꿈꾸던 모습이다.
인스타그램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 비슷한 업체 광고를 마구 띄운다..
가격 문의 덧글을 다는 동안 영어학원 사장님 눈빛이 떠오르고 괜히 죄책감을 느꼈다.

구입은 어렵더라도 가격은 알고 있어야지!
언젠가 필요하게 될 수 있으니!
마음을 정리하고 낡은 책장을 어떻게 메이크 오버하면 좋을지도 고민해 본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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