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읽기] 2015.04.01 탈스펙 채용
1. 이슈 들어가기
지난 하반기부터 뉴스에는 ’기업 채용 탈스펙'이라는 키워드가 심심찮게 보입니다. 오랫동안 비난을 받아온 ’고스펙' 현상에 대한 대처를 나름대로 내놓은 듯 합니다. 탈스펙에 대해서는 올바른 방향이라는 해석과 구직자들의 지지도 높은 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탈스펙이 과연 구직자들에게 합리적인 채용을 마련해주고 있는지 조명하고자 합니다.
2. 이슈 디테일
스펙 8종 세트
학벌, 학점, 토익점수, 어학연수, 자격증, 봉사활동, 인턴, 수상경력. 취업준비생들이 이른 바 ‘스펙 8종 세트’로 부른다는 항목입니다. (…) 실제로 입사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얼마나 반영이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최적화 된 혹은 최소한 남들과 비슷하게 채워 넣을 수 있는 스펙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합니다. 입사지원서에 스펙을 적는 란은 해가 갈수록 늘어 이제는 최소 8종이 기본이 된 거고요.
이제 ’탈스펙' 흐름
기업들은 그 동안 ‘관행’처럼 해 왔던 서류심사에 왜 변화를 주겠다는 걸까요? 먼저, 입사한 뒤 직무를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보려는 것이고 두 번째로, 스펙을 만드는데 드는 과도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는 게 해당 기업들의 공통된 설명입니다. (…) 입학부터 졸업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무엇으로 채웠는지를 평가해야 그 직업이 어떤 직업이든 적합한 사람을 찾을 수 있고 구직자 입장에서도 취업 후의 혼란은 적고 일에 대한 만족도는 더 높을 수 있을 겁니다.
[KBS, 3월 30일] [취재후] 구직자 ‘스펙8종 세트’로 무엇을 평가할 수 있습니까?
사람인 임민욱 팀장은 "실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스펙 쌓기가 구직자들이 생각하는 취업시장 비정상 1위일 정도로 구직자 스스로도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막연한 불안감과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해 여전히 스펙쌓기에 몰두하는 구직자들이 많다. 기업들의 채용전형과 평가기준이 달라지고 있는 만큼 구직자들도 목표기업과 지원직무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한 맞춤형 역량 강화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베리타스알파, 3월 17일] ’탈스펙채용' 트렌드 반전.. 오히려 구직자 스펙 증가
그런데, 말 뿐인 것 같은 느낌은 왜
프로기: 탈스펙의 취지와 효용에 대해서는 더 없이 공감합니다. 한국의 이력서엔 불필요한 항목들이 많았죠. 이력서에 사진을 넣는 건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비판도 거셌습니다. 경력과 직무 능력만 간단히 적어서 내는 외국식 이력서와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죠. 그런데 이 ‘탈스펙화’가 과연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채용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요.
a. 직무 관련 경험이 뭘까, 할 수 있을까
탈스펙이 또 하나의 스펙을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독특한 경험과 직무 관련 인턴 등이 중요해지면서 또다시 유리한 스펙을 쌓기 위한 경쟁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실제 많은 구직자가 스펙의 상향 평준화를 취업 고민 1위로 꼽기도 했다.
[머니위크, 3월 26일] ’탈스펙’이 또 다른 스펙 만든다
‘직무 역량 평가’가 추상적이라 준비를 하기 어렵다는 불만도 있다. 취업준비생 한모(26)씨는 “외국어능력시험이나 자격증 등 스펙을 쌓기 위해 몇년간 준비했는데 이런 것을 안 본다고 하니 허탈한 생각도 든다”며 “탈스펙 전형은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지 애매모호한 측면이 있어서 취업이 오히려 더 어려워진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세계일보, 3월 27일] "토익점수·학력 빼라"…진화하는 채용의 기술
“기업이 남다른 능력과 스토리를 원하는 이유는 알겠다. 하지만 구직자 나이가 대부분 스물대여섯인데 그 인생 동안 드라마틱한 성공과 실패가 얼마나 있을 수 있겠나. 나는 대학 입학 후 모든 등록금과 용돈을 스스로 벌었는데 ‘가난 극복 스토리’라도 이야기하라는 건가. 이전엔 기업이 ‘성실성’을 본다고 해서 학점 관리를 열심히 했는데 이제는 ‘창의성’이라니, 그것을 판단할 객관적 기준도 없고 뭘 준비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다.”
[주간동아, 3월 23일] [커버스토리 | 취업, 고시가 되다 02] ‘스펙’ 안 본다고? 말장난일 뿐
그런데 취업준비생들에게 이제 이 ‘직무 관련 경험’이란 게 커다란 부담이 되고 있다. 기업들은 직무 관련 경험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주로 인턴십을 활용하는데 인턴십이 하나의 필수 스펙처럼 자리 잡아서다. 일단 인턴십은 지원 과정부터 만만치가 않다. 취업 관련 사이트에는 ‘인턴십 합격 스펙’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직무 경험을 쌓으려고 인턴을 하는 건데 인턴 지원서에 직무 경력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다. 기업들은 ‘탈스펙’을 외치지만 취업 당사자들에겐 ‘스펙 더하기’로 느껴진다는 의미다.
[동아일보, 3월 18일] [청년들의 job談]부리는 인턴십 아닌 가르치는 인턴십으로
프로기: 직무 관련 경험성. 관련 경험이 있다는 것은 채용하는 입장에서도 취직하는 입장에서도 유용합니다. 특히나 1년 이내 퇴사율이 높은 것이 다반사인 것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범위가 굉장히 추상적이죠. 게다가 그 관련된 경험을 갖는 과정부터가 기존의 채용 과정, 인맥/학연/혈연/고스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력서의 탈스펙화, 면접의 스펙화
그 대신 자기소개서나 면접, 영어회화 능력 평가 비중은 올라가는 추세다. LG그룹 관계자는 “지원자의 자기소개서 평가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기아자동차는 이번 상반기 공채에서 1박 2일 심층면접을 도입했고, 현대자동차는 영어 면접 난도를 일상 대화에서 토론 수준으로 높였다.
과연 그럴까. ‘탈스펙’ 현상은 제2의 취업 사교육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기자가 만난 구직자들은 각종 ‘취업전문학원’으로 몰리며 또 다른 경쟁에 허덕이고 있었다. 3월 8일 서울 강남역 부근 A학원. 서류전형 대비반, 금융계 취업반, 대기업 인·적성검사시험 대비반 등을 운영하는 곳이다. A학원의 한 직원은 “스펙이 낮아도 자기소개서,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얻으면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며 학원 졸업생 중 2014년 대기업 공채 합격자의 명단을 보여줬다. 대학별 이름과 학점, 나이, 토익점수 등이 나와 있었다. 이 직원은 “지난해 합격자 중 수도권과 지방 소재 대학 출신이 40% 이상”이라고 홍보했다.
[주간동아, 3월 23일] [커버스토리 | 취업, 고시가 되다 02] ‘스펙’ 안 본다고? 말장난일 뿐
심층적으로 기술하도록 요구한 조직생활 경험과 목표 달성 경험 등의 자기소개서 기술이 스토리와 창의성이 중요해지면서 수백만원을 들여 전문 과외를 받는 취업 준비생들도 생겨나고 있다. (…) 대전의 한 4년제 대학에 재학중인 이정아(23)씨는 “어차피 심층 면접과정에서 영어면접이나 대학활동 등이 나오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스펙에 인턴경험 등의 또 하나의 스펙이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중도일보, 3월 19일] 말뿐인 '탈스펙'… 취업준비생 불만
3. 편집인 코멘트
소설가 김훈은 ‘밥벌이’를 강조합니다. “밥벌이는 인간이 자기 도덕과 인격을 완성해가는 길”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그 밥벌이의 기회가 갈수록 숨이 막히게 좁아지는 모양입니다. 인간으로서 중요한 부분 한 쪽이 너덜너덜 해지는 것 같아요. 올해에는 은행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작년보다도 더욱 적은 인원을 채용할 계획이라는 뉴스가 보입니다.
20대 채용과 관련해서는 참 말할 거리가 많죠. 기업 면접을 위해서 수업을 빠지거나 출결/레포트에서 편의를 봐주는 일이 부지기수입니다. 기업에서 선호하지 않는 대학 학과 통폐합 문제도 불거졌었죠. 또한 경력 한 줄을 위한 열정페이도 이십대를 짓누르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기업의 일방적인 잘못은 아니니까요. 학생 개인보다는 이십대 전체를, 지원자뿐만 아니라 채용하는 기업의 현실을, 한국의 산업 정책을, 더 넓게는 경제 흐름도 봐야겠지요.
"신문은 하나만 읽으면 안됩니다, 행간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