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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기 Oct 27. 2023

안 예쁜 엄마

35일 차


집에 온 지 열흘 정도. 집에 와서는 핸드폰으로 널 찍은 적도 얼마 없는 것 같아. 주변에 사진을 보내달라는데 보낼 사진이 없어.


며칠 전에 엄마 친구가 첫 손님으로 집에 왔었어. 그전까지는 밀린 이삿짐 정리, 밀린 신생아 용품 마련 때문에 한 시도 쉬지 않고 움직였거든. 그러다 친구가 오니까 쌓아둔 긴장이 풀렸는지, 친구가 가고 나서 몇 시간동안 눈물이 계속 흘렀어. 엉엉 울었다기보단 그냥 주르륵주르륵. 너를 젖 물린 채로 할머니한테 하기 싫다고 울며 말하기도 했어. 할머니 앞에서 운 게 10년만이던가.


이 우울감이 엄마는 엄청 당황스러워. 지금까지 산후우울증 앓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여린 사람들이구나- 환상이 컸던 사람들이구나- 라고 여겼거든. 엄마에게 일어날 일은 아니라고만 막연히 생각했지. 그래서 걷잡을 수 없이 젖어드는 이 우울하고 부정적인 나 자신이 낯설고 힘들어.


널 낳은 세상은, 유치하게 들리겠지만. 하루 아침에 티비도 못 보고, 밥도 맛이 없고, 슈퍼도 못 나가고, 잠도 못 자는 세상이었어. 아빠랑 즐겨왔던 둘만의 루틴도 모두 깨지고. 감옥이 왜 형벌인지 깨닫게 된 며칠이었어. 이렇게 잃은 것들만 자꾸 떠올라. 게다가 티비에선 엄마가 일할 뻔한 프로그램들이 자꾸 나와서 마음을 괴롭혀. 널 향한 애정보다 상실감이 앞서버린 안 예쁜 엄마야.


우울감이 더 커질까봐 무서워서 인정하고 여러번 말로 뱉었어. 힘들다, 우울하다, 좋지 않다. 그런데 또 계속 부정적인 생각들만 하다보니 그 말에 갇히는 것 같기도 해. 다른 엄마들은 손가락 좀 봐, 발가락 좀 봐 하면서 안 컸으면 좋겠다는데. 엄마는 널 보고 감탄하지 못해서 미안해. 이제는 좀 말부터 바꿔야겠어. 건강한 엄마가 되어볼게.


너에게 쓰는 일기가 너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글이 아니라, 엄마의 고됨을 토로하는 미운 글이 될까 걱정도 돼. 하지만 결국 너도 날 닮을 테니까. 나랑 닮은 엄마는 저럴 때 힘들어했구나, 저렇게 이겨냈구나 안다면 너 스스로 겪을 고통도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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