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일 차
영시는 곧 백일을 맞는다. 엄마 역할을 3개월이나 했는데도, 여전히 '안 예쁜 엄마'에 머물러 있다. 아직 벅차고 아직 힘들다. 다른 사람들도 나만큼 힘든가 기웃거리게 되는데. 육아의 힘듦을 토로하는 포스팅, 글, 대화 끝에는 99% '그래도 예쁘지?'가 따라붙는다. 아 물론 예쁘지. 그런데 나는 그 예쁨이 나의 힘듦을 상쇄시켜 준다기보단, 예쁜 건 예쁜 거고 내 힘듦은 힘듦으로 남아있다.
체력이 좋은 편인 데도 하루가 끝나갈 쯤엔 온몸이 바스러지는 것 같고, 정신력도 좋은 편인 데 하루종일 온갖 걱정을 사서 한다. 남편, 워킹맘, 커리어, 가사도우미, 시터, 친정부모님, 경제력, 노후, 자기 계발 등등 뒤엉키는 걱정들이 물 먹은 듯 매일 더 무거워진다. 산후우울감도 많이 벗어났다고 느끼는데, 이 걱정이 부풀어 커지게 두었다간 다시 병이 날 것 같다. '그래도 예쁘지?'로 매듭지어버리지 않고, '그렇게 힘들지'로 매듭짓는 게 내겐 더 위로다.
아이를 낳고 싶다는 예쁜 마음 이전에 '각오'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나의 모든 시간과 아기의 성장을 맞바꾸기로 각오하기. 집이 집답게 가꾸기로 각오하기. 글자의 크기는 일정해서 눈으로 보기에는 그냥 문장 두 줄이지만. 저 두 줄의 문장이 가진 부피와 무게는 어마어마하다.
나의 모든 시간과 아기의 성장을 맞바꾼다는 걸 조금 더 크리피하게 말하면 나의 생명과 아기의 생명을 맞바꾸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숭고한 희생을 하고 있는 기분보다는... 대학생 때 단순 반복 작업만 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그때 내 시간=내 생명과 최저임금을 맞바꾸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도 비슷하다. 그래서 내가 '안 예쁜 엄마'다. 이걸 희생으로 여기지 못하고, 내 생명을 죽이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니.
하지만 타고난 성향 탓도 있다. 나는 하루하루를 음미하며 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오늘도 무사한 하루였음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못 된다. 높은 목표를 세워두고 그걸 달성하는 데서 재미를 느낀다. 내가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산다면, 그건 목표 달성을 위한 체커를 한 칸씩 칠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즐겁게 사는 것인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를 기르는 일은, 더욱이 갓난아기를 기르는 일은 성취욕이 끼어들 틈이 없다. 아기의 욕구를 때마다 채워주면 시간이 흐르고 하루가 저문다. 육아가 고되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성취에 미친 자였던 사람들이라면 이 고됨이 고통스러움으로까지 느껴질 것이다.
매일 마음은 고통스럽지만, 그 덕에 인생의 진리를 곱씹는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성취에 암만 미쳐봤자 성취할 것이 없는 1년이다. 아기를 앞에 두고 먼 미래를 계속 걱정해 봤자 바뀌는 건 없다. 커리어가 다 망가진다 한들 지금 어찌할 바도 없다. 그래서 현인들이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살라고 하는 거구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