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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기 Dec 29. 2023

매일매일 꼬박꼬박

102일 차

신들을 속인 죄로 커다란 바위를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일을 영원히 해야 하는 시지피스. 육아와 가사 노동은 시지프스의 바위 같다. 매일 똑같은 빨래, 똑같은 상차림, 똑같은 설거지, 똑같은 청소, 똑같은 정리 정돈을 반복하는 일상. 어릴 땐 밖에 나가서 낯선 사람들과 일하는 아빠가 더 힘들 것 같았는데, 이제야 설거지를 하다 그릇을 던지며 울었던 엄마가 더 힘들었음을 알겠다.


그렇게 고행 같은 날들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반복되는 정갈한 의식주 챙기기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란 생각을 한다. 결국 산다는 게 간단한 거니까. 안전한 집에서 편안하게 있을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인 거니까. 삶을 잘 지탱하게 해주는 근본적인 것들에 대한 감각을 새기고 있다.


시지프스의 바위가 고된 이유가 또 하나 있는데. 매일 힘든 걸 반복해야 해서뿐만이 아니라. 매일매일 꼬박꼬박 하루를 써야만 한다는 점이다. 일을 할 땐 시간을 고무줄처럼 썼다. 할 일을 몰아서 압축적으로 할 수도 있고, 몰입하면 시간이 휙 지나가기도 하고, 지지부진하게 늘여서 할 수도 있었다. 뭐 하나가 익숙해지면 그건 금방 해치우고 다음 스텝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고.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건 진짜 매일매일 꼬박꼬박 차곡차곡 하루가 쌓여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루 단위가 낱알처럼 느껴진 적은 없었다. 하루라는 시간에 대한 감각도 새겨지고 있다. 나는 빨리, 누워 있는 아기 돌보는 법은 알겠고 이제 기어다니는 아기 돌보는 법으로 넘어간다거나, 복직 이후에 저글링 하는 삶으로 넘어간다거나. 하여튼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은데 넘어갈 수가 없다는 걸 몰랐다.


그렇게 꼬박 하루씩 쌓여서 어느새 백일도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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