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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기 Mar 01. 2024

이해 못 할 부모가 된다면 슬플 거야

165일 차


엄마가 스트레스 푸는 법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책이야. 원래는 서점에 가서 책을 왕창 사거나, 도서관에 가서 목적 없이 책들을 이것저것 보거나 하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으니까 아쉬워. 어제오늘 책 하나를 읽고 있어. 봉태규 씨가 쓴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라는 책인데, 그중 너무 마음 아픈 이야기가 있었어.


봉태규 씨는 아버지를 미워했나 봐. 아들에게 미움을 살 만큼 여러 날, 여러 해에 걸쳐서 아버지가 어떤 잘못을 하셨겠지. 그런 아버지에게 나쁜 습관이 있었대. 밥 먹으면서 젓가락으로 이런저런 반찬을 휘저어놓는 습관. 하루는 이제 머리가 꽤나 컸다고 생각한 봉태규 씨가 아버지에게 그 습관을 지적한 거야.


"아주 어릴 때는 혼이 날까 봐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시간의 도움을 받아 나도 머리가 굵어지자 어느 날밥을 먹다 말고 불쾌함을 쏟아냈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거지에 그 사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러더니 입안에 있던 밥을 목구멍으로 넘기지도 못하고 나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 어차피 그는 늙었고 난 머리가 굵어진 상태였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이왕 시작된 불만, 가시 돋친 말을 계속 뱉어냈고 그 사람은 더욱더 당황하였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그 사람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나는 아주 의기양양했다. (...) 그로부터 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가 차려준 밥을 먹을 때였다. 식탁 위에 내 반찬만 아주 정갈하게 접시에 따로 내어져 있었다. 그 사람은 여전히 몹쓸 버릇을 고치지 못한 채 반찬통에 들어 있던 나물을 두 번, 세 번 건드리고는 입속에 가져갔다.


(중략)


시간들이 더해져 세월이 되고 그 세월마저 흐르니 나는 더 머리가 굵어지고 그 사람은 할아버지에 가까워졌다. 그즈음 같이 식사를 할 일이 있었다. 찌개를 끓여서 냄비째 먹다가 나에게 찌개를 따로 덜어주려고 하는 그에게 설거지하기 귀찮으니 그냥 먹자고 말을 건넸다. 국자를 들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던 그가 크게 당황하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 그날 식사 자리에서 선명하게 기억나는 하나는 잘 웃지 않는 그 사람이 가끔씩 던지는 내 실없는 얘기에 아주 파안대소했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웠을까? (...) 아들이 서툰 숟가락질로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어보라고 권해준다. 이게 뭐라고 참 기분이 좋다. 침을 한가득 묻힌 숟가락이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 나도 개의치 않고 아들도 개의치 않는다. 그 사람이 사고로 죽고 난 후에 혼자 밥을 먹을 때면 가끔씩 냄비째 찌개를 같이 먹었던 선명한 기억들 때문에 왈칵 눈물을 쏟을 때가 있다. 냄비에 서로의 숟가락을 찔러대도 개의치 않았던 그 식사가 그에게는 얼마나 큰 기쁨이었을까?"


이 일화가 너무 슬픈 이유는. 엄마도 오늘 엄마의 엄마에게, 아빠에게 같이 밥을 먹으면서 뭘 하지 마라 뭘 해라 잔소리를 늘어놨고. 엄마가 더 맞는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고. 그저께는 엄마의 동생도 엄마의 엄마에게, 아빠에게 이렇게 하는 게 맞다 틀리다 날선 말들을 했거든. 사실 엄마의 엄마도, 아빠도 당신들이 할 말이 정말 많으실 텐데. 답답하고 화나고 억울한 마음을 자식 앞이니까 누르고 눌러서 '그래 그러렴'하고 이해해 주고 마는 걸 텐데. 이런 사소한 불편함을 일일이 티를 내다가 관계가 일그러지는 게 가족이라서, 이게 너무 평범한 일이라서 슬펐어.


영시가 자라면서 엄마 아빠의 부족한 부분을 보게 되겠지. 그때 낡아버린 엄마 아빠에게 독한 말을 거침없이 할 수도 있겠지. 엄마 아빠는 속수무책으로 그 말을 맞으면서, '그렇지만 널 많이 사랑해'라는 마음을 속으로 되뇌기만 할 거야. 그러다가 네가 농담이라도 건네는 날엔 반갑게 들으며 마냥 웃고 말겠지.


지혜롭고 유쾌한 엄마 아빠가 될게. 어른이 되어가는 영시와 내내 대화할 수 있는. 영시가 이해하지 못 할 부모가 된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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